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8일(현지 시간) 통화에서 대만 문제를 두고 격하게 충돌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해협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고 하자 시 주석은 “불장난을 하면 스스로 불에 타 죽는다(自焚·자분)”고 맞섰다.
두 정상은 미 권력 서열 3위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 추진, 중국의 신장위구르 소수민족 탄압,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등에서도 사사건건 부딪쳤다. 특히 시 주석은 한국 등이 포함된 반도체 동맹 등을 통해 미국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이것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
양측의 갈등 고조로 한반도 정세 또한 격랑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특히 ‘칩4 동맹’에 날을 세우며 한국의 참여를 반대한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 2시간 17분 통화 내내 충돌
두 정상은 바이든 대통령 집권 후 다섯 번째인 이날 통화에서 2시간 17분 내내 대립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에 군사 위협의 강도를 높이는 것을 지적하며 “현상 유지 상태를 일방적으로 변화시키거나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약화하려는 그 누구에게도 강하게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자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과 마찬가지로 ‘불타 죽는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대만에 관한 14억 중국 인민의 뜻은 확고하다. 대만 독립 및 외부 세력의 간섭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맞섰다.
양측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서도 충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분리를 언급하며 전적으로 펠로시 의장 본인의 뜻에 달려 있음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관계자는 “미 입법부는 행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별도 기관임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경제 현안에서도 대립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 노동자에게 악영향을 주는 지식재산권 침해 같은 중국의 불공정한 경제 관행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반면 시 주석은 공급망 안정, 에너지 및 식량 안보 등에서 미국이 중국과 소통해야 한다며 “중국을 최우선 경쟁자로 보는 시각은 잘못됐다. (중국의) 공급망 단절을 시도하는 것은 미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더 취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맞섰다. 미국이 ‘프렌드 쇼어링(friend shoring)’을 주창하며 한국 일본 대만 등을 규합해 ‘칩4’ 같은 반중 협의체를 구성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양측은 러시아산 원유 가격의 상한제 실시 등 대러 제재에 관해서도 입장 차이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회담 후에도 신경전…대면 여지는 남겨
양측은 회담 후에도 신경전을 이어갔다. 로이터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중국이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자행한 집단학살 및 강제노동을 문제 삼고 중국에 억류된 미국인의 석방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9일 “집단학살과 강제노동이 언급됐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집권 민주당의 밥 메넨데스 미 상원 외교위원장 또한 이날 중국의 압박에 굴복해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이 무산되면 안 된다며 “시 주석의 호전적 발언은 결국 ‘허풍(bluster)’”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펠로시 의장은 29일부터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을 찾으나 대만행에 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