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는 상수, 변수는 위기 극복 과정 더 절박한 태도로 위기관리 능력 보여줘야
길진균 정치부장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30년 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등장했던 슬로건이 최근 정치권에서 자주 거론된다. 1992년 미국 대선, 걸프전 승리에 안주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은 경제위기론을 앞세운 빌 클린턴 후보에게 패배하며 재선에 실패했다. 3월 대선 승리와 6월 지방선거 완승을 이끌어낸 윤석열 대통령도 경제 위기 속에선 민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뒤따른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사방에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넘쳐난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를 기록했다. 전기요금 억제, 유류세 할인 등 그동안 억눌러온 물가 정책을 고려할 때 앞으로 더 오를 일만 남았다. 여기에 경기 침체 우려에도 금융위기 때처럼 돈을 풀어 대처하기도 어렵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오히려 금리를 계속 올려야 할 판이다. 우리 경제가 미증유의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에 민심은 요동치고 있다.
이번 경제 위기는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대책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제 경제 위기는 상수(常數)다. 변수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이끄는 대통령과 여권의 리더십, 즉 정치다.
그런데 여권은 넋이 나간 듯하다. 인사 파문에 이어 이준석 당 대표 ‘궐위’, 대통령과 원내대표 간 문자메시지 논란까지 국민은 여권의 어이없는 행태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 사이 국정동력을 뒷받침하는 대통령 지지율도 악화 일로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80일 만에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한국갤럽).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 중에서 윤 대통령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지율이 하락한 사례는 없었다.
위기 상황일수록 지도자는 국민에게 자신을 믿고 따르면 무난히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지금의 혼란은 일시적인 상황이고, 위기는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결국 윤석열 정부를 바라보는 민심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여당은 이 점에서 실패하고 있다. 국민이 화가 난 것은 위기 속에서도 ‘자기 정치’에만 몰두하는 대통령과 여당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위기를 겪었다. 매끄럽지 않은 해명으로 잡음이 이어지곤 했다.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처음으로 국민과의 허니문 기간을 갖지 않은 정권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