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물과 불 기운 조화 이룬 창녕 가야 소녀의 넋 깃든 송현동고분군 화왕산 불기운 막아주는 우포늪 부곡온천에서 여행의 피로 싹
사계절 어느 때나 방문해도 아름다운 우포늪은 한여름에는 자라풀, 개구리밥 등 수생식물들이 피어나 늪 전체를 녹색 융단으로 깔아놓는다.
《경남 창녕에는 ‘메기가 하품만 해도 물이 넘쳐나는’ 우포늪과 ‘큰불이 나야 이듬해 풍년이 든다’는 속설로 유명한 화왕산이 있다. 우포늪 물기운과 화왕산 불기운이 조화를 이뤄 부곡온천 같은 온천수가 풍성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리고 더 먼 시절에는 이곳에서 가야의 신비한 역사가 펼쳐졌는데….》
○비화가야의 순장 소녀 ‘송현이’길
송현이길에 조성된 가야소녀 ‘송현이’ 모형.
송현이는 송현동고분군 15호분 주인공의 시녀로 추정된다. 잘 다듬어진 고분 산책로를 따라 송현이의 ‘고향집’에 다다랐다. 송현동고분군은 낙타 등처럼 생긴 크고 작은 고분들이 창녕 시내 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들어선 형태다. 전망 포인트에 올라서니 봉긋한 무덤 윤곽선을 따라 창녕읍 시내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무덤이 망자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평지에 조성된 경주 고분들과는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가야 송현동고분군에서 바라본 창녕군 전경.
교동고분 바로 옆에 위치한 창녕박물관에는 고분 축조 과정을 보여주는 디오라마,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와 금공예품 등 각종 유물, 왕릉급 무덤을 재현해 놓은 전시 공간 등이 있다.
호수의 반영(反影)이 아름다운 명덕수변공원.
○ 창녕 우포늪에서 만난 초록 융단
화산 폭발로 생성된 화왕산과 짝을 이루는 우포늪(2.505km²)은 1억4000만 년 전에 생긴 국내 최대의 내륙 습지이자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다. 우포늪은 화왕산에서 발원한 토평천이 낙동강으로 유입되기 전 쉬어가는 늪지대다. 서울 광화문의 해태상이 관악산의 화기를 막는 역할을 하듯이, 우포늪은 화왕산의 불기운을 제어하는 자연 방호벽이라는 풍수설도 있다.
우포늪은 여러 곳의 늪지를 합쳐 놓은 곳이다. 가장 큰 면적의 우포(소벌)를 비롯해 목포(나무벌), 사지포(모래벌), 쪽지벌, 복원습지인 산밖벌로 이루어져 있다. 각 늪지는 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우포는 겨울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고, 사지포는 연꽃이 출중하고, 목포는 늪에 뿌리를 내린 버드나무가 운치 있고, 쪽지벌은 가시연꽃이 신비한 자태를 연출한다.
우포늪을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도 잘 조성돼 있다. 우포늪생태관∼제1전망대∼숲 탐방로 1길∼생태관으로 되돌아오는 1km(30분) 짧은 코스를 비롯해, 우포늪 생명길을 탐방하는 8.4km(3시간) 코스, 우포 출렁다리와 산밖벌까지 탐방하는 9.7km(3시간 30분) 코스가 있다.
보통은 남녀노소 부담 없이 우포늪을 즐길 수 있는 우포늪 생명길을 많이 찾는다. 보도로 뚜벅뚜벅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 쉽게 둘러볼 수도 있다. 여름 무더위에 찾은 우포늪은 흘린 땀을 충분히 보상해줄 만큼 멋지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그간 모습을 감추었던 마름, 자라풀, 생이가래, 개구리밥 등 수생식물들이 깨어나 늪 전제를 초록 융단으로 깔아놓은 듯하다. 그 위로 새들이 유유히 날아다니는 모습도 운치 있다. 운이 좋으면 국제적 보호종인 따오기를 만날 수도 있다.
잠자리를 테마로 한 곤충체험학습관인 우포 잠자리나라. 친환경 체험 테마 콘텐츠로 자연생태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화왕산 불기운으로 데운 부곡온천
온천을 기반으로 호텔과 콘도, 골프장 등 종합 휴양시설로 재탄생한 부곡온천.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곡(釜谷)’이라 불린 마을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 있었는데, 전국 각지에서 옴 환자와 나병 환자 등 피부질환자들이 찾아와 치료를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말하자면 화왕산의 왕성한 불기운으로 가마솥(부곡)을 데우니 국내에서 가장 높은 수온인 78도의 온천수가 펑펑 솟아나와 환자들을 치료했다는 스토리다.
지금의 부곡온천은 고(故) 신현택 옹이 1972년 부곡면 거문리(원래 이름은 온정리·溫井里)에서 온천수(지하 63m)를 찾아낸 후 하루 6000t의 유황온천을 채수하면서부터다. 부곡온천 관광특구에는 호텔과 콘도, 골프장, 온천 분수대 등 온천을 기반으로 한 종합 휴양 시설과 다양한 온천장이 들어서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가족만이 오붓하게 즐길 수 있도록 가족탕을 갖춘 객실들이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글·사진 창녕=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