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불평등소득정책연구실장
빈곤층에게는 여름이 특히 중요한 시기다. 더위를 잘 견뎌내야 할 뿐만 아니라 7월에 마무리되는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다. 빈곤층의 생활 안정과 생계에 영향을 주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기준 중위소득’이 이때 결정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위기, 빈곤가구를 위한 최후의 안전망 역할을 한다. 이들이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받기 위해선 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기준선 이하 소득과 재산을 가져야 한다. 수급권자를 선정하고 급여를 지급하는 기준선이 되는 게 바로 기준 중위소득이다. 2015년 이전에는 최저생계비가 그 역할을 해 왔지만, 2015년부터 기준 중위소득으로 대체됐다.
올 7월에도 전문가들과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내년도에 적용할 기준 중위소득을 4인 가구 기준 5.47% 인상하기로 심의 의결하였다. 1인 및 2인 가구도 각각 6.84%와 6.01% 인상했다.
올해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진통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간 지켜지지 않았던 사회적 약속이 처음으로 지켜지게 되었다는 의미도 크다. 기준 중위소득은 법에 명시된 것과 같이 통계청이 발표하는 가구소득의 중위값을 기초로 발표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는 전년도 기준 중위소득에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 3년 평균변화율을 적용하도록 의결한 바가 있다. 그럼에도 2020년 이후 기준 중위소득 결정 과정에서 국내외적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개진되면서 기존에 합의한 기준이 지켜지지 못했다.
올해도 예년과 같이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들어 기준 중위소득 증가율을 낮추자는 주장이 나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 불안정,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문제 등이 지적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년과 다르게 새 정부 초기이고, 오히려 금리와 물가 상승 등으로 인해 빈곤층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을 고려해 이미 합의된 기준을 기초로 기준 중위소득을 발표했다.
지난달 1일 국회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직접 작성한 가계부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를 보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지원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수급권자의 눈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주거비, 광열수도비, 의료비 등 빈곤가구의 실생활과 관련된 필수 지출에 대한 지원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번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 5.47%도 여전히 빈곤층과 수급권자가 원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 나온 기준 중위소득 발표는 기존 사회적 합의와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여기에 빈곤층의 생활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2015년 맞춤형 급여체계 개편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의 인상을 결정한 점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내년 7월에도 무더위에 지쳐가는 빈곤층과 수급권자에게 단비와 같은 기준 중위소득 산정 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란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불평등소득정책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