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중 물적분할 피해방지 대책 발표
LG에너지솔루션 일반투자자의 공모주 청약이 시작된 올 1월 18일 서울 종로구 KB증권 종로지점에서 고객들이 청약 신청을 하는 모습. LG화학이 전지사업부문을 떼어내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은 물적분할 때문에 모회사 주주가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도형 경제부 기자
지난해 12월 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직접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고질적인 한국 주식시장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중요한 원인으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최근 수년 동안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가 급격히 늘어난 가운데 지난해 유난히 큰 논란이 됐던 것이 바로 기업의 물적분할이었다. 물적분할은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일부 사업부를 따로 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에 이용되면서 한국 기업의 불공정한 지배구조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 기존 주주에겐 지분 안 주는 기업분할
개인 주식 투자자들에게 ‘공공의 적’처럼 여겨지는 물적분할은 국내에서 법으로 허용된 주식회사 분할 방법 가운데 하나다. 주식회사가 기업을 분할할 때 기존 회사(모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하는 자회사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기존 회사 주주에게는 신설 회사의 주식이 배분되지 않는다. 반면 또 다른 기업분할 방식인 인적분할의 경우 신설 자회사의 주식을 일정 부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성장 가능성이 큰 신사업 부문을 따로 분사하기로 결정한 A사가 물적분할에 나설 경우 A사는 자회사인 B사의 주식 100%를 보유하게 되고 A사의 기존 주주들은 B사의 주식을 받지 못 한다.
반대로 인적분할을 선택하게 된다면 A사의 주주 구성과 동일하게 B사의 주식이 부여된다. A사의 주주 구성이 대주주 60%, 일반주주 C 25%, 일반주주 D 15%라면 이들 세 주주는 인적분할로 신설되는 B사의 주식 역시 같은 60 대 25 대 15의 비율로 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적분할은 일반적으로 모회사의 지배주주에게는 유리하지만 일반주주에게는 불리한 기업 분할 방식으로 평가된다. 분할 이후에 자회사 지분 100%를 갖게 되는 모회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배주주가 자회사 의결권을 사실상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배터리 보고 투자했는데 껍데기만 남아”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물적분할 이후에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으면 개인투자자의 피해는 그나마 작을 수 있다. 다른 투자자가 신설 자회사에 직접 투자할 길이 없어 기존 투자자의 지분 가치는 유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수년 동안 문제가 된 국내 기업의 물적분할 및 자회사 상장은 대부분 미래 성장 가능성으로 주목받던 핵심 사업부문을 분할, 재상장하면서 모회사 주주에게 피해를 입히는 ‘쪼개기 상장’이었다.
○ 주식매수청구권이 주주보호 핵심 열쇠
2020년과 지난해 국내에서는 모두 7건의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이 이뤄졌다. LG화학뿐만 아니라 SK케미칼과 SK이노베이션 등에서도 “물적분할 때문에 투자했던 기업이 껍데기만 남았다”는 개인투자자의 한탄이 터져 나왔다.금융당국은 이 가운데 주식매수청구권을 가장 강력한 주주 보호 장치로 보고 있다.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에게 물적분할 계획이 공개되기 이전의 가격으로 주식을 팔고 ‘탈출(Exit)’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업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사실상 물적분할에 나서지 말라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며 “그만큼 개인 주주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기 때문에 도입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 “개인주주 무시당하는 풍토를 개선해야”
이 같은 방안은 공시 및 상장 규정 수정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시행할 수 있다.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법 개정이 필요 없기 때문에 이르면 올해 안에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전문가들은 물적분할 같은 행태를 개별적으로 막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미국처럼 기업이 개인주주 권리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을 따로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과는 달리 기업들이 이를 극히 삼가는 분위기다. 주주 권리를 보호하는 풍토가 정착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개인주주를 기만하는 행위를 할 경우 기업이 막대한 보상을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는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양도 과정에서 대주주가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얻는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이처럼 개인주주가 불공정하게 대우받고 피해를 보는 문제를 바로잡아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도형 경제부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