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본보에 게재된 통일부에서 제공한 탈북 어민(점선 안)의 북송 관련 영상 캡처본. 세로로 촬영됐다. 동아일보DB
송은석 사진부 기자
7월, 2019년 탈북 어민 두 명이 판문점을 통해 북송되는 과정이 찍힌 영상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동영상에는 북송을 거부하던 한 탈북자가 북한군에게 인계되기 직전, 자신의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자해하는 듯한 모습이 찍혔다. 결정적인 장면을 캡처하기 위해 방송 화면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는데, “에이, 이왕이면 가로로 찍어서 판문점도 보이고 요원들도 많이 보이게 하지, 세로로 찍어서 쓰기가 애매하네…”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얘기를 듣던 부원 중 한 명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요즘은 다 세로로 찍어.”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가로 화면은 영상매체의 기본 포맷이었다. 인간의 두 눈은 태생적으로 수평에 대한 시야각이 수직보다 넓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2004년 삼성전자가 선보였던 일명 ‘가로 본능’ 폴더폰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를 계기로 당시 해외 유명 제조사에 밀려 국내에서조차 고전을 면치 못했던 삼성전자는 반등의 기회를 잡게 됐다. 세로 액정화면을 돌려 가로로 볼 수 있는 이 제품은 당시에는 ‘문화적 충격’ 수준이었다. 사람이 봉을 잡고 가로로 매달리는 광고는 각종 패러디물을 파생시키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가로 본능이 익숙했던 소비자들에게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로 세로 본능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사람들은 점차 스마트폰을 세로로 잡은 채 사진과 동영상을 감상하거나 촬영하기 시작했다. ‘모바일 이용자가 세로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전체의 94%에 달한다’는 모바일 기기 정보 업체 ‘사이언티아 모바일’의 2017년 조사 결과는 세로 본능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현상을 증명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로 포맷이었던 영화에서조차도 실험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어니시 차건티 감독이 2017년 발표한 영화 ‘서치’에서는 화상 통화를 하는 배우의 얼굴을 세로로 클로즈업해 관객들에게 감정 전달을 극대화했다. 2020년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애플의 지원을 받아 오직 세로로만 촬영한 단편 영화를 발표해 화제가 됐다. 계단을 올라가거나 빌딩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등 세로 화면의 특징인 상승과 하강의 액션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호평을 받았다.
이렇게 뉴미디어뿐만 아니라 영화까지 세로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과는 달리 보도사진은 아직 가로 프레임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한 장의 사진에 많은 정보를 담아야 하고 배경, 주연과 조연 등을 배치하려면 가로 포맷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 사진기자들도 인터뷰나 인물의 전신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가로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최근 동아일보에서는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이 강화된, 모바일에 최적화된 기사를 수차례 보도했었다. 스마트폰을 엄지로 내릴 때마다 기사와 영상, 사진이 탄력적으로 나오는 방식이었다. 사진을 담당했던 본 기자도 습관적으로 가로로 사진을 촬영했더니 추후 모바일 콘텐츠를 제작할 때 세로 전환이 쉽지 않아 애를 먹었었다. 돌이켜보면 기술의 발전과 함께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못 따라간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세로형 포맷은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에서 벗어나 한 차원 더 발돋움할 가능성을 가진 포맷이다. 최근엔 스마트폰 화면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중구 명동 등지에 설치된 옥외광고 전광판들도 세로로 바뀌고 있다. 단지 화면을 수직으로 90도 꺾었을 뿐인데 관념, 표현 방식도 그에 맞춰 변화되고 있다. 물론 120여 년 동안 대세를 굳건히 지켜왔던 가로 포맷을 전부 대체하긴 어렵겠지만 스마트폰 시대에 약진하고 있는 세로의 도전을 응원해 본다.
송은석 사진부 기자 silver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