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2명, 성폭행 피해자-가해자 각각 대리 피해자의 수사 진행 기대 불구… ‘조사 불출석’ 조건 합의… 불입건 변호사들 서로 “계약 사실 몰라”… “법으로 쌍방대리 금지… 징계 대상”
한 중소형 로펌이 지난해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대리하며 변호사법이 금지한 ‘쌍방대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은 양측 합의로 일차 종결됐는데, 로펌 측은 ‘피해자와 조기 합의를 이끌어내 경찰 수사 자체를 막았다’며 홍보까지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이 사안을 두고 “대한변호사협회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합의 후 경찰 출석하지 않아 종결
2일 피해자 A 씨 측에 따르면 A 씨는 지난해 4월 24일 B 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A 씨 측은 “B 씨가 다음 날 전화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고 했다. 두 사람을 모두 아는 지인의 합의 권유에 A 씨는 사건 이틀 뒤 법무법인 태림의 정모 변호사와 고소·합의 대리 위임 계약을 체결했다. 태림은 소속 변호사가 20여 명인 중소형 로펌이다.결국 사건은 지난해 6월 경찰에서 불입건으로 종결됐다. 수사는 합의 여부와 별개로 진행될 수 있지만 A 씨가 합의 조건에 따라 경찰 조사에 출석하지 않아 종결된 것이다.
그러나 A 씨는 자신이 조사에 불출석하는 등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도 수사는 진행된다고 오해했다고 했다. A 씨 측은 “정 변호사가 ‘합의해도 성범죄는 수사가 계속 진행된다’고 해 믿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기자가 확인한 A 씨와 정 변호사 사이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도 그 같은 정황이 나타나 있다. A 씨는 합의 당일인 4월 28일 정 변호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느냐”라며 “나중에 수사관이 조사 끝나고 조사 결과를 알려줄 텐데 그걸 들을 수 있는지”를 물었고, 정 변호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후배 변호사’라더니… 같은 회사
A 씨가 경찰의 수사를 바랐던 것은 당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라고 했다. A 씨 측은 “술에 취해 불법 촬영이나 약물 투여를 당했는지 등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던 탓에 경찰 조사를 통해 명백히 확인하고 싶었다”고 밝혔다.A 씨는 올 5월 합의금 반환을 감수하고라도 사건 정황을 밝히겠다며 경찰에 B 씨를 다시 고소했다. 이 과정에서 박 변호사가 정 변호사와 같은 태림 소속이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태림은 자사 홈페이지에 “준강간 피고소 대리해 사건 초기 적극적 대응으로 불입건 내사종결”이라며 사건 처리를 가해자 입장에서 홍보하기도 했다.
A 씨 측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수사로 범행을 밝혀낸 뒤 합의해 줘도 늦지 않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수사기관 협조 금지 조항은 피해자가 사건 조사를 원하는 경우 통상 피해자 측 변호사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A 씨를 대리하는 심앤이법률사무소 관계자는 “B 씨의 직업과 소득 수준을 고려할 때 합의금 액수가 적은 편”이라고 했다.
●두 변호사 “상대가 계약했는지 몰랐다”
정 변호사는 “합의 후에도 경찰 조사가 계속된다고 설명했느냐”는 동아일보 기자의 질문에 “처벌불원서를 내면 이게(수사가) 잘 안 되는 것을 A 씨가 인지했던 것 같다”고 다소 애매하게 답했다.쌍방대리에 대해 묻자 정 변호사는 “박 변호사가 B 씨와 계약서를 쓴 줄 몰랐다”고 했고, 박 변호사는 “정 변호사가 A 씨와 계약을 체결한 걸 몰랐다”고 했다. 다른 변호사가 이 사건에 관여하는 건 알았지만 계약 체결 사실까지는 몰랐다는 주장이다. 태림 측은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