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지지율 대통령실장 책임져야 왜 국민의힘이 비대위 차려야 하나 여당에 내부총질 자유 허용하되 ‘대통령黨’ 아닌 협력적 당정관계를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이 5일 일주일간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대통령비서실 인사를 단행했다. 비서실장을 포함해 수석비서관 4명을 바꾸는 예상 밖의 큰 규모였다.’
2013년 8월 6일자 동아일보 1면 톱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제목은 ‘“성과 없이 신뢰 없다” 청와대 참모 절반 물갈이’.
윤석열 대통령도 휴가 뒤 업무에 복귀하면 대통령실 개편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9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무려 60%다(갤럽). 그런데도 취임 첫해 강하게 국정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참모진을 ‘문책성 경질’했다. 문제는 지나치게 윗분의 뜻을 받드는 비서실장을 인선한 것이었지만.
이보다 대통령에게는 여당 장악이 더 중했던 모양이다. 이준석이 내부 총질이나 하는 밉상이긴 해도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당 대표다. 그가 한 달 전 당 윤리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자 야권에선 “여당 대표도 피해 갈 수 없는 검찰 캐비닛”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눈엣가시였던 이준석을 팽하고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해줬던) 안철수 의원을 당 대표로 앉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
마침내 이준석이 사라지자 당정관계가 만족스러워진 때문일까.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라고 대통령은 국민의힘을 칭찬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새 비상대책위원회를 차려야 하는 당으로 전락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 뜻을 잘 받든’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죄가 있다면 대통령의 이 문자를 들켰다는 거다. 절대 안 한다던 대통령의 당무 개입을 노출시켜 권성동이 대표 직무대행에서 쫓겨난 것까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 89명 중 88명이 대통령 뜻을 받들어 비대위 설치에 동의한 것은 국민의 대표답지 않다. 왜 대통령실 아닌 여당이 ‘비상’이어야 한다는 건가.
여당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게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만에 하나, 윤 대통령이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을 내세워 국민의힘을 검찰처럼 상명하복 잘하는, 내부 총질 절대 않는 ‘대통령 당’으로 개조하거나 혹은 창당이라도 할 복안이라면 부디 한국 정당사(史)를 들여다봤으면 한다.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창당한 새천년민주당 역시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133석)에도 못 미치는 115석을 얻었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2004년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일약 152석을 차지했지만 3년 9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 조화와 협력의 당정관계가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최고의 시민 결사체는 정당이고, 다수 시민의 지지를 얻은 정당이 통치하는 것이 정당 정부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의 대통령 후보였고, 윤석열 행정부는 국민의힘 정부인 거다.
윤핵관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렀다고 해서 젊은 당 대표의 의견마저 내부 총질로 치부하는 윤 대통령의 리더십은 국민의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국민이 시퍼렇게 도끼눈을 뜨고 지켜보다 다음 선거에서 냉정하게 심판할지 모른다. “외국군에 의존하지 않아도 자주국방이 가능하다”는 민주당 이재명 의원의 국방위 질의는 벌써부터 모골이 송연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언급했다.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했다. 여당 대표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내부 총질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렵게 정권교체에 성공한 윤 대통령에게는 실패할 자유가 없다. 다행히도 대통령답게 달라질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