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타이베이 근교 총기훈련소… 우크라戰 이후 수강생 50% 늘어 “강국의 소국 침략 현실 깨닫기 시작”… 여론조사 “펠로시 방문 부정적” 64% 찬성파 ‘열렬히 환영’ 플래카드 들고, 반대파 ‘미국인 나가라’ 목소리 높여
펠로시 타이베이 도착한 날… 호텔 인근서 찬반 집회 2일 밤 대만 타이베이에 도착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머문 그랜드하이엇호텔 인근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의 방문에 대한 찬반 집회를 각각 벌이고 있다. 지지자들은 ‘대만은 펠로시 의장을 환영한다’라는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다(윗쪽 사진). 반대자들은 ‘미국은 나가라’고 적힌 팻말을 들어 보이며 그의 방문에 항의했다. 타이베이=AP 뉴시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방문으로 최고조에 이른 미국과 중국의 긴장 관계를 지켜보는 대만은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대만인에게 양국 마찰이 중국의 군사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 펠로시 방문 후 커지는 불안
영국 BBC방송은 펠로시 의장 방문을 앞둔 지난달 31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 근교에 있는 총기훈련소 풍경을 이달 2일 보도했다. 폐쇄된 공장 창고에서 젊은이 30명이 공기총 등을 활용해 기본적인 총기 사용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 옆 건물에서는 방탄복을 입고 헬멧을 쓴 훈련생들이 시가전 훈련을 하고 있었다.훈련소 운영자인 맥스 장 씨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월 말 이후 수강생이 50%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강한 나라가 더 작은 이웃 나라를 침략할 수 있다는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이 이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급반에서 총에 탄환을 장전하던 리사 쉐 씨도 BBC에 “중국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나와 가족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총기 사용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린창쭤(林昶佐) 입법의원(국회의원)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대만 국민이 국방력 강화를 지지한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라며 “특히 젊은 세대는 조국을 수호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 방문이 확정된 뒤 대만 언론 롄허(聯合)보가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64%는 ‘대만해협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에 환영하지 않는다’고 부정적 태도를 나타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전쟁 시 대피 방법까지 거론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 펠로시에 대한 찬반 엇갈려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찾은 1박 2일 동안 거친 행선지 곳곳에서는 그의 방문을 두고 엇갈린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들은 펠로시 의장이 머문 그랜드하이엇호텔과 타이베이 쑹산공항 앞에서 ‘대만인은 펠로시 의장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중국은 대만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대만에서 가장 높은 건물 타이베이101 외벽에는 ‘TW(대만)♥USA’라는 대형 메시지가 비춰졌다.반면 대만 독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국인은 나가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미국은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3일 펠로시 의장이 찾은 대만 의회 앞에서도 양측이 맞불 시위를 벌이며 긴장감을 높였다.
호주국립대 쑹원디 객원교수는 2일 미 뉴욕타임스(NYT)에 “대부분 대만인은 이번 방문을 강력한 미-대만 관계의 중요한 신호로 인식하며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NYT는 “대만 일각에서는 펠로시 의장 방문이 대만을 미중 간 지정학적 싸움판의 말(馬)처럼 보이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