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0평대 아파트에 사는 A 씨는 5년 전만 해도 주택연금에 들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가 당시 6억 원짜리 집을 맡긴 뒤 죽을 때까지 매달 받을 수 있는 연금은 185만 원 정도였다. 집을 물려받을 자녀들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가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올 들어 주택연금에 가입했다. 5년 만에 집값이 2배가 되면서 연금 지급액이 297만 원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자녀 눈치’ 걱정을 접어둘 만한 액수였다.
▷주택연금은 최초 가입 때 평가한 주택 시세에 따라 평생 받을 연금액이 확정되는 구조다. 집값이 최고점일 때 가입하는 게 유리하다. 고령층 주택 보유자 가운데 A 씨처럼 집값이 오를 만큼 올라 이제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사람이 늘면서 주택연금 가입 바람이 불고 있다. 그 결과 올 상반기 주택연금 가입건수는 69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이상 늘었다. 5월 말 기준 누적 가입자 수는 9만7600명으로 5년 전의 2배 수준이다.
▷보통 주택연금 가입자 추이는 집값 흐름과 거꾸로 간다. 지금처럼 집값이 정점을 찍었다고 보는 사람이 많을 때는 가격이 떨어지기 전 ‘연금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몰린다. 반면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일 때는 되레 중도해지하려는 사람이 많아진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던 2020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2931명과 4121명의 가입자가 중도 해지했다. 해지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집을 팔아 차익을 남기는 게 낫다고 봤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 리스크’가 부모만이 아니라 자녀의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주택연금에 들면서 자녀 눈치 볼 일은 예전보다 줄었다. 하지만 연금에 가입하려는 사람은 경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집값 추이를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데다 고금리 시기 월 지급액이 줄어들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연금을 받으려고 자신의 집을 담보로 맡기는 결정은 개인적으로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그마저도 집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고민이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