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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공사 5건 중 1건에 불법하도급…관련 대책은 국회에서 낮잠

입력 | 2022-08-04 12:19:00


정부가 올 상반기 전국 공공공사 현장 가운데 불법 하도급이 의심되는 일부 현장에 대한 점검을 실시한 결과 5곳 가운데 1곳에서 불법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부실공사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인 불법 하도급 근절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는 지난해 6월 터진 광주 철거공사 붕괴사고의 핵심 원인으로 불법하도급을 지목한 뒤 징벌적 손해배상과 불법하도급 업체 퇴출조건 강화 등을 포함한 강력한 대책 마련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책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공공공사 5건 중 1건에서 불법 하도급
국토교통부는 올해 상반기(1~6월)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발주한 공사현장 가운데 불법하도급이 의심되는 161개 현장에 대한 실태점검을 실시한 결과, 36개 현장에서 불법이 적발됐다고 4일(오늘) 발표했다. 이번 점검은 공사금액의 80% 이상을 직접 시공하도록 돼 있는 조건을 준수하는지 여부와 하도급 시 발주청의 승인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진행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36건 가운데 34건은 80% 이상 직접 시공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고, 이 가운데 7건은 발주청의 사전 승인도 받지 않았다. 특히 종합건설업체 A사는 교육청 공사를 진행하면서 전문건설회사 B에 하도급을 줬지만 건설공사대장에 이런 사항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고, 발주자의 사전 승인절차도 건너뛰었다. 종합건설업체 C사는 전체공사금액의 70%를 하도급으로 진행해 20%로 제한된 하도급 허용범위를 훌쩍 넘어섰다.

국토부는 이번에 적발된 업체들에 대해 해당업체가 등록돼 있는 관할지역 지자체에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에 필요한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적발된 업체들은 1년 이내의 영업정지 또는 위반한 하도급 공사금액의 30% 이내의 과징금을 부과 받는다. 또 형사처벌 대상이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 정부 대책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처벌 수준으로는 불법 하도급을 근절시키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원청과 하청을 맡는 시공사는 불법 하도급을 통해 얻는 경제적인 이익을 노리고 이면계약이나 구두계약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로 인해 관리 감독을 맡은 공사발주자나 인허가청이 이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처벌 수위가 미흡한 것도 불법하도급 문제를 근절시키기 어려운 요인이다. 처벌대상이 제한적이고, 처벌 수준도 대부분 과징금이나 과태료 부과에 그쳐 불법하도급에 따른 경제적인 기대이익보다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강력한 처벌방안을 담은 종합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8월 국토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이 참가한 ‘광주 붕괴사고 재발방지 대책’(이하 ‘대책’)이다. 두 달 전인 지난해 6월 광주에서 발생한 철거건축물 붕괴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불법하도급이 존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마련된 조치였다.

대책에는 ①이면·구두·위장계약 등을 통해 진행되는 불법하도급 적발을 위해 국토부 및 지자체에 특별사법경찰권 부여 ②공공공사 입찰참가 제한기간 확대(1년→2년) ③불법하도급 처벌 대상 확대(시공사→발주자+시공사) ④불법하도급 업체 퇴출 요건 강화(5년 내 3회→10년 내 2회) ⑤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사망사고 시 피해액의 10배) 등 불법하도급을 근절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이 망라돼 있었다.

정부는 당초 지난해 말까지는 법령 정비를 모두 끝내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관련 법령 개정안 대부분이 지난해 하반기에 국회에 상정됐으나, 상임위원회의 문턱도 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다.


● 민간공사 불법하도급에도 적절한 대책 마련 필요
정부 대책이 공공공사와 일부 민간공사에 제한적으로 적용될 예정인 것도 문제다. 민간공사에서도 불법하도급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공사에서는 하도급 공사금액을 낮추기 위해 원청업체가 공사입찰을 무리하게 반복하거나 입찰금액을 깎는 일 등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중소건설사 모임인 대한전문건설협회 산하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하 ‘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 ‘건설공사 하도급 입찰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 따르면 지난해 649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187개(28.8%)가 하도급 공사계약 과정에서 재입찰을 경험했다. 또 공사규모가 커 대기업들만 참여하는 하청입찰에서는 전체(90개사)의 57.7%(51개사)가 재입찰을 통해 공사를 따낼 수 있었다.

이처럼 입찰을 반복하는 이유는 공사금액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반복되는 재입찰을 통해 공사계약을 맺었을 때 최초입찰가보다 평균 17.6% 정도 감액됐다.

원청업체가 최저가 입찰을 통해 하도급업체로 선정한 뒤 정당한 사유 없이 낙찰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하는 일도 무려 24.5%나 됐다. 또 입찰을 진행하면서 다른 입찰자의 견적금액을 알려주고, 하청사업자에게 낮은 입찰금액을 써내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하청업체들은 대부분 기업 유지에 필요한 공사물량 확보를 위해 이처럼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고 있었다.

연구원은 따라서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민간공사 하도급 입찰 결과 공개를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시 하도급대금의 최대 2배에 해당하는 과징금 부과 등과 같은 처벌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