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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 내달 원유 찔끔 증산… “바이든, 사우디에 뺨 맞은 격”

입력 | 2022-08-05 03:00:00

하루 10만 배럴… 7, 8월의 15% 수준 “유가 안정엔 턱없이 부족” 평가
지난달 중동 갔던 바이든 체면 구겨… 미국내 “모욕 수준” 비판여론 확산
美-사우디 관계 악화될 가능성… 백악관 “중요한건 유가하락세” 진화




치솟는 국제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인권 정책의 후퇴란 비판까지 무릅쓰고 지난달 중동을 방문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체면을 구겼다. 그의 중동 순방 후 처음 열린 산유국 협의체 ‘OPEC플러스(OPEC+)’ 회의에서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주요 산유국이 합의한 증산량이 바이든 행정부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쳤기 때문이다.

OPEC+는 “추가 생산 여력이 많지 않다”고 했지만 미국에서는 모욕적 수준의 증산이란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CNN은 바이든 행정부가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로부터 “뺨을 맞은 격”이라고 꼬집었다. 백악관이 “중요한 것은 유가가 하락세라는 점”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좋지 않은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 다음 달 하루 10만 배럴 ‘찔끔’ 증산

3일 OPEC+는 다음 달 원유 증산량을 하루 10만 배럴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7, 8월 일평균 증산량(64만8000배럴)의 15%에 불과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치솟은 국제 유가를 안정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OPEC+는 올해 내내 월 40만∼65만 배럴씩 증산했지만 이달 들어 유독 증산 규모를 대폭 줄였다.

미 외환중개업체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선임 애널리스트는 AP통신에 “에너지 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며 증산 규모가 워낙 작아 세계 경기 침체 우려에도 국제 유가 또한 배럴당 10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로이터통신 역시 세계 원유 수요를 감안했을 때 불과 86초면 소비되는 양이라고 진단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짊어질 정치적 후폭풍 또한 작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8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된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 배후로 무함마드 왕세자를 거론했다. 취임 전 “사우디를 왕따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유가 급등 으로 6월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년 내 최고치인 9.1%까지 치솟고 11월 중간선거에서의 패배 또한 예상되자 ‘냉혹한 독재자와 손잡는다’는 미 일각의 비판에도 중동을 찾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무함마드 왕세자와 주먹 인사까지 나눴지만 그는 대통령의 면전에서부터 증산에 부정적인 뜻을 나타냈다. 이번 OPEC+ 회의의 결정에도 무함마드 왕세자의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 미-사우디 관계 악화 불가피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 회복 또한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동 순방을 발표한 후부터 야당 공화당은 물론이고 집권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된 순방이 별 소득 없이 끝났음이 드러나면서 ‘괜히 가서 모욕만 당했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라드 알카디리 이사는 증산 규모가 무의미할 정도로 적다며 “물리적인 관점에서도 미미하고 정치적으로는 모욕적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컨설팅업체 클리어뷰에너지파트너스의 케빈 북 전무이사 또한 “사우디 방문에 든 정치적 비용을 부담한 바이든 대통령이 아무것도 돌려받지 않는 것은 모욕”이라고 진단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급히 진화에 나섰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3일 “중요한 것은 석유와 가스 가격이 내리고 있다는 점”이라며 “대통령이 중동 방문을 발표한 순간부터 유가가 내려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순방 일정이 공개된 6월 14일부터 유가 하락세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에이머스 혹스틴 미 국무부 에너지안보 고문 역시 “전체 생산량이 늘었고 유가 하락에도 기여했다”며 증산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