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고수/신주영 지음/324쪽·1만6000원·솔
이호재 기자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매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법정 사건들이 탄탄하고 현실적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우영우’의 법정 에피소드가 매력적인 건 드라마 대본을 쓴 문지원 작가가 법조인들이 출간한 에세이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실제 각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들이 낸 책들을 에피소드 원작으로 삼고 각 변호사, 출판사와 저작권 이용허락 계약을 맺었다.
신주영 변호사가 쓴 이 책은 지난달 20, 21일 방영된 ‘소덕동 이야기’ 에피소드의 원작이 된 에세이다. 에세이는 2008년에 제기된 제2자유로 도로구역 결정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다뤘다. 드라마로 만드는 과정에서 지명을 비롯해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바뀌었지만 마을을 두 동강 내는 자동차전용도로 건설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고군분투한 건 실제 있었던 일이다.
사건은 당시 경기 고양시 현천동 주민 4명이 경기도지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공론화됐다. 주민들은 “제2자유로가 마을을 양분해 주민들이 피해를 보게 됐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일단 공사를 중지시키는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은 받아들였다. 하지만 본안 소송에선 주민들이 졌다. 당시 법원은 “경기도의 환경영향평가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기 때문에 도로구역 결정 처분을 취소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짧은 판결문에 담기지 않았던 감동적인 뒷이야기도 드라마 곳곳에 녹아들었다. 소송에서 진 주민 대표는 신 변호사에게 “재판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동안 당했던 설움을 다 보상받았다”며 고마워했다. 그런 모습이 재판 당사자를 진심으로 위하는 우영우의 따뜻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주민들이 어려운 법적 용어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 건 드라마 속 소덕동 이장이 “그… 뭐더라?”는 말을 반복하는 장면으로 다시 태어났다. 법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 것. 제2자유로가 도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건축학과 교수의 주장은 드라마가 도시와 도로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바탕이 됐다. 겉만 보면 지역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기 쉬운 주민들의 주장이 일부 납득되는 이유다.
신민영 변호사의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한겨레출판사), 조우성 변호사의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서삼독)도 드라마 에피소드의 원작이 된 에세이다.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면서 이들 에세이의 판매량도 늘었다. 잘 설계된 소설, 맛깔나는 웹툰을 드라마로 만드는 것도 지식재산권(IP) 활용법이겠지만 생생한 경험이 담긴 에세이를 드라마에 녹이는 것도 IP 다각화가 아닐까. 결국 독자나 시청자나 원하는 건 감동적인 사연이니 말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