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몰리는 투자자들
지난달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현대자동차 및 기아의 회사채는 각각 200억 원, 250억 원 물량이 매각 개시 1분 만에 모두 팔렸다. 삼성증권이 연 4%대 수익률로 특판한 은행·금융지주 채권도 판매 개시 20여 분 만에 ‘완판’됐다.
이처럼 채권시장에 자금이 몰리는 이유는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증시가 흔들리면서 안전자산을 찾는 투자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채권은 꾸준히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고 만기에 원금을 받을 수 있어 위험자산인 주식보다 안정적이다. 글로벌 경제에 경기 비관론이 확산되자 그 여파가 자본시장에서도 목격되고 있는 것이다.
○ 증시 탈출해 안전자산 몰려
반면 주식 같은 위험자산에서는 개미들이 발을 빼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는 지난달 5일부터 이달 5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1조8512억 원을 순매도했다. 개인은 올 4월만 해도 7조 원 이상을 순매수했지만 5월 들어 순매도로 반전하더니 지난달에도 1조 원에 가까운 주식(9850억 원)을 팔아치웠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유가가 지난 주말 배럴당 9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인 올 2월 수준까지 내려간 것이다.
○ ‘경기 비관’ 신호 잇달아
경기 불황을 예고하는 신호는 시장 금리 추이에서도 나타난다. 장단기 금리 차가 점점 좁아지면서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형성되고 있다.일반적으로 10년물 이상의 장기 금리는 단기 금리보다 높게 형성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가 성장하고 자금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 금리에 투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올해 초만 해도 0.47%포인트였던 10년 만기와 3년 만기 국고채 금리 차가 5일 0.045%포인트까지 줄어들었다. 이처럼 장단기 금리 차가 줄어들거나 역전된다는 것은 그만큼 투자자들이 앞으로의 경기 전망을 안 좋게 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추후에 경기가 나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시장 금리에 반영된 것”이라며 “이미 금리가 역전된 미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날 ‘8월 경제동향’에서 “소비심리가 급격히 악화되고 주요국의 경기가 둔화되면서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 하방 요인이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단지 “경제 심리가 위축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던 한 달 전보다 경기 인식이 더 부정적으로 바뀐 것이다.
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