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반도체) 동맹’ 예비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미국에 전달한 가운데, 중국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8일 대통령실과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최근 미국 측에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휴가 복귀 출근길에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칩4 가입 여부를 “철저하게 국익 관점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칩4는 우호국·동맹국들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협의체 목적이 대(對) 중국 견제인 만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를 경험한 한국 입장에선 부담이다.
중국과의 경제안보 문제에서 비(非)등거리를 유지해 온 일본이나 대만과 달리 우리 정부는 그동안 칩4 가입 여부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해왔다.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2021년 기준)는 25.3%로 1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 반도체 수출 62% 가량이 중국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중국이 무력 반발을 하는 상황에서 칩4 동맹 문제까지 표면으로 떠올라 정부 입장에선 난처하게 됐다.
정부는 칩4 논의 초기부터 참여해 중국이 강조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존중을 각국에 설득하면서 중국과의 대립을 최대한 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논의 수위에 따라 중국이 대만의 칩4 참여를 원칙 파기로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한 것과 별개로 중국이 칩4 국가들의 움직임에 대응해 경제 보복을 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의 경우 중국이 당장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를 대체할 만큼 자국 기술 수준이 오르지 않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산업에 대한 보복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지난달 말 기준 D램과 낸드 메모리카드 가격이 각각 14.03%, 3.75% 하락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업황 둔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줄을 잇는 가운데, 각국의 반도체 산업 대응 방식도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미 상무부는 반도체 시설 및 장비투자 세액공제(25%)을 비롯해 보조금을 합산하면 아시아 입지 기업 대비 40% 가량의 첨단 반도체 제조단가 격차 해소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팹리스(반도체 설계)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파운드리(위탁생산에)에 강점이 있는 삼성전자·대만TSMC와 같은 아시아 기업을 향해 미국 내 투자를 우회로 압박할 길을 열어둔 셈이다.
칩4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업황 둔화, 중국 반발 우려, 자국 위주 산업 정책 등으로 인해 우리 반도체 산업만 이중고, 삼중고를 시달리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칩4가 중국을 자극할 수밖에 없지만 아직 내용을 만들어가는 단계인 만큼 너무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칩4는 미국 자국 중심이고, 미국이 반도체 제조가 약하니까 한국, 대만, 일본 등을 통해서 공급망을 안정화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예비회의 참석 자체가 당장 중국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우리가 반도체 강국이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 협력 요청을 할 수밖에 없고 거기에 반대할 이유도 없으니 (예비회의에) 가는 것”라며 “내용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을 의식하거나 너무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한중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여러 채널을 통해 칩4가 특정국가 배제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중국 측에 설명한다는 방침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오는 9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에서 이같은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한중 통상장관 회담 개최를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