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선동열이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예전 호남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특히 심야 시간에는 더 그랬다. 딱지를 떼려던 경찰이 그를 보자 한 말. “아니 당신 공보다 빨리 달리면 어떻게 해. 앞으로는 조심해.” 웃자고 꺼낸 말이다. 선동열이 왜 심야에 과속을 했는지, 훈방한 경찰이 직무유기를 한 것은 아닌지 따지지 말자. 증거 불충분에 공소 시효도 지났다. 그때 그 경찰의 머릿속엔 이 단어가 맴돌았을 것이다. 시속 150km.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스피드다. 올림픽 모토에도 맨 먼저 나온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 올림픽 3대 메이저인 육상 수영 빙상의 대부분은 스피드를 측정하는 기록 경기다. 달리기에서 가장 느린 마라톤도 결국은 시간으로 순위를 결정한다. 쇼트트랙은 순위 경기지만 세계 기록은 인정한다. 멀리뛰기와 높이뛰기도 속도가 승부를 좌우한다. 반면 스키는 기록은 재지만 순위로만 승부를 가린다. 과속을 부추기지 않기 위해서다. 스피드와 관련된 여러 썰을 풀어본다.
가장 빠른 구기종목은?
수포츠 독자라면 아시겠지만 다시 정리해보자. 뉴턴의 제2법칙인 F=ma. 힘(F)은 질량(m)과 가속도(a)에 비례한다. 이를 구기종목에 적용시키면 힘이 같을 경우 공이 가볍고 적을수록 빠르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경기 중 낼 수 있는 평균 볼 스피드는 대체로 배드민턴 골프 스쿼시 테니스 아이스하키 야구 축구 탁구 배구 수구 럭비 순이다. 배드민턴과 탁구를 빼면 거의 일치한다.
배드민턴은 구기 종목이지만 공이 아닌 셔틀콕을 사용한다. 셔틀콕은 길이 6.7cm에 무게는 5g 안팎이다. 그래도 탁구공(4cm, 2.7g)보다는 크다. 그럼에도 1위에 오른 것은 라켓의 탄성(F)이 탁구채보다 훨씬 좋기 때문이다. 매즈필러 콜딩이란 선수가 2017년 시속 426km로 최고를 찍었다고 한다. 셔틀콕은 날아갈 땐 16개의 깃털이 오므라들면서 공기 저항을 줄인 뒤 네트를 넘어가선 원래대로 펴지면서 급감속해 수직 낙하한다. 탁구는 시속 250km까지 나왔다는 설이 있지만 비공인 기록인 것 같다.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 평균 시속은 120km이고, 세계 최고는 140km 수준이다.
논란이 많은 구기종목 볼 스피드
골프도 OB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장타 대회에선 더 빠른 속도가 나온다. 우리나라에도 왔던 팀 버크란 장타전문 선수는 최고 시속 356km로 500야드를 넘나드는 드라이버 비거리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의 평균 타수는 3오버파인 75타다. 2019년 KEB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는데 2라운드 31오버파로 처참하게 컷 탈락했다. 프로 최장타자인 브라이슨 디셈보는 2020~21시즌 내내 평균 볼 스피드만으로도 306km이었다. 연습장에선 340km까지 나왔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인체의 힘만 이용해서 내는 가장 빠른 볼 스피드는 2011년 왼손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의 170km로 보면 된다. 축구는 2006년 로니 헤베르송이 프리킥으로 211km를 찍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통은 120km 안팎이고, 최고는 150km 수준이다. 최고 기록과의 편차가 너무 크다. 배구는 130km, 수구는 95km, 럭비는 75km 안팎. 참고로 야구에서 타자가 방망이로 친 공은 2018년 지안카를로 스탠튼의 197km가 최고 기록. 오타니 쇼헤이가 2016년 일본 대표팀 평가전에서 223km를 기록했다고 돼 있으나 비공인이다. 이렇게 여러 기록이 난무하는 이유는 스피드건을 이용해 시즌 내내 볼 스피드를 공식 측정하는 종목과 항목은 몇 개 안 되기 때문이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기록 경기의 스피드 서열
기록 경기는 말 그 대로 한 치 오차 없이 스피드가 산출된다. ‘인간 탄환’ 우사인 볼트의 스피드는 100m(9초58)가 시속 37.58km, 200m(19초19)가 37.52km이다. 200m가 100m보다 빠른 게 정상이지만 볼트가 은퇴했으니 기록 단축의 꿈도 날아갔다. 볼트의 100m 순간 최고 속도(65m 지점)는 44.7km.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 치타(120km)가 아닌 토끼(48km)보다 느리다.
마라톤은 엘리우드 킵초게가 2018년 베를린에서 세운 2시간01분39초가 세계 기록이다. 시속으로 치면 20.81km. 그래도 다람쥐(20km)보다는 빠르다. 100m를 평균 17초3에 달렸으니 중년 아저씨는 1km가 아니라 100m를 따라가기도 벅차다.
수영은 자유형 50m 세계 기록이 20초91이니 시속 8.6km가 인간이 물속에서 내는 최고 스피드다. 생쥐(13km)보다 느리다. 자유형 접영 배영 평영 순으로 배영이 평영보다 빠르다. 스피드스케이팅은 1000m 세계 기록(1분06초42)이 500m(34초03)보다 빠르다. 시속으로 치면 54.2km이다. 링크가 작은 쇼트트랙은 당연히 이보다 느리다. 스키는 세계 기록을 내지 않는다. 대회마다 날짜마다 슬로프 상태 등 자연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요한 클라레가 2013년 월드컵에서 41세의 나이에 순간 최고 시속 162km를 기록해 100마일 벽을 처음 깼다는 보도가 있긴 하다.
도구나 동력을 이용한 종목의 스피드
봅슬레이는 2019년 라트비아 4인승 대표팀이 기록한 시속 153km, 루지는 139km 기록이 있다. 사고 방지를 위해 봅슬레이는 남자 4인승 기준 최대 630kg의 중량 제한을 둔다. 뉴턴의 제2법칙을 뒤집어보면 같은 속도라면 무거워질수록 힘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루지는 상한 속도가 135km가 넘지 않게 코스를 설계한다.
진종오가 쓰는 공기권총은 시속 540km, 화약권총은 970km 안팎의 속도를 낸다. 양궁은 230km. F1은 2016년 유럽 그랑프리 예선에서 발테리 보타스가 378km를 낸 게 순간 최고 기록이다. KTX(300km)보다 빠르다. F1은 대형사고 위험이 있어 편안하게 관전할 수 있는 대회를 모토로 2017년부터 차폭과 타이어 면적을 넓혀 이제 이런 기록은 나오기 힘들다. 모터사이클은 263km.
느림의 미학
볼트는 은퇴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이 꿈이었지만 호주 A리그에서 프리시즌 때 몇 경기 뛴 게 전부였다. 한 경기 2골 기록도 있지만 이벤트성 몰아주기였다. 1980년대 롯데는 100m 한국기록 보유자 서말구를 대주자용으로 영입했지만, 그는 1군 무대에 서보지도 못했다. 반면 그렉 매덕스는 135km의 구속으로도 역사상 최고의 메이저리그 투수로 꼽힌다. 100승 투수 유희관도 있다.
BBC가 만든 걸작 다큐멘터리 ‘인간 포유류, 인간 사냥꾼’을 보면 아프리카 남서부 칼라하리 사막의 초기 인류는 자신보다 몇 배는 빠른 영양을 사냥하는데 뾰족한 수단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냄새와 흔적을 따라 영양을 며칠이든 끝없이 추적했다. 마침내 탈진한 영양이 눈만 끔뻑끔뻑하며 털썩 주저앉을 때까지. 인간이 여느 포유류와 다른 점이자 마라톤의 진정한 시초였다. 결국 스피드는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닌 셈이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