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성 광화문광장 보이는 게 다 아냐 가치 있는 쌍둥이 건물은 오히려 훼손 주변에 미술관 과잉인데 또 미술관 정작 꼭 필요한 음악당에는 무관심
송평인 논설위원
서울 광화문광장 자리는 본래 광장이 들어설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일대를 인간 친화적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처럼 양쪽 인도를 크게 넓히고 차도를 줄였어야 한다. ‘지상 최대 중앙분리대’ 같은 광장을 만들어 놓고는 광장 구실을 못 하니까 접근성을 높인다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어 놓은 것이 재조성된 광화문광장이다.
건축을 배우지 않아도 유럽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광장이 어떤 곳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광장은 본래 텅 빈 곳이다. 광장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광화문광장을 처음 조성할 때 세종대로 한가운데 있던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을 다 뽑아버렸다. 이제 광장에 그늘이 없다고 다시 나무를 심었다. 건축물까지 세웠다. 광장은 반쯤 공원이 됐다.
‘광장이면 어떻고 공원이면 어떤가. 전보다 접근성이 좋아지고 소음도 줄고 쉴 곳도 있어 나아졌다’는 호평이 적지 않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돈을 들였으니 좋아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문제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 탈레반과 사실상 한 무리인 문화재 탈레반들은 광화문 현판이 본래 검은 바탕에 흰 글씨임에도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엉터리 복원을 해놓고도 고칠 생각을 않는다. 그러면서 이번엔 광화문 앞 월대 복원을 밀어붙여 그 공사가 한창이다. 광화문 앞 월대는 고종 때 중건된 경복궁에는 있었지만 그전부터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세종 때 ‘중국 사신을 맞으려면 월대가 있어야 한다’는 예조판서의 주장을 세종이 농번기에 민력(民力)을 차출할 수 없다며 거부한 기록이 있을 뿐이다. 설혹 그 얼마간 후에 월대가 지어졌다고 하더라도 중국 사신을 맞기 위한 사대(事大)의 난간을 광화문 앞 직선도로를 비틀어 가면서까지 복원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월대가 복원되면 광장의 치우침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를 다시 차지할 때 자신들이 알박기 해놓은 치우침을 핑계로 광화문 일대 전체를 광장으로 만들겠다고 덤비는 것이 가능하도록 일이 착착 진행된 셈이다. 새로운 길을 낼 수 있으면 모르되 그럴 수도 없으면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다닌 길을 비틀고 막을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세상에 엄한 게 없는 자들의 발상이다. 우리를 쉬게 해주는 건 광장이나 공원인지 몰라도 우리를 먹고살게 해주는 건 길이다.
광화문에서 지켜야 할 가치 있는 유산 중 하나가 1960년대 미국 차관을 들여와 우리 기술로는 못 짓고 필리핀 기술로 지은 남국(南國)풍의 쌍둥이 건물이었다. 미국대사관과 똑같은 건물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자리에 있었으나 박물관을 개조하면서 그 쌍둥이성(性)을 없애버렸다. 국민이 하기에 따라 한국과 필리핀처럼 국력이 역전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의 교훈과도 같은 건물을 아이로니컬하게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없애버렸다.
광화문 주변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과잉 상태다. 우선 국립현대미술관이 있고 그 분관이 덕수궁 안에도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국립고궁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도 인근에 있다. 옛 풍문여고 자리에는 새로 공예박물관도 들어섰다. 그런데도 송현동 빈터에 이건희 박물관을 짓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와대를 베르사유궁처럼 미술관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