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정전기념일 69주년 기념행사에서 노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스1 노동신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독트린은 일반적으로 종교적 교의나 정치적인 주의(主義), 신조 같은 기본 원칙을 일컫는 말이지만 핵무기 사용 원칙에 관해서도 사용된다. 핵보유국은 각국이 안고 있는 사정에 따라 독자적인 핵 독트린을 갖고 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간주해도 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핵실험을 6차례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반복하는 나라가 독자적인 핵 독트린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밑에서 ‘인공위성’이라고 부른 ICBM이 발사됐고 제3차 핵실험이 실시된 2013년경부터 북한에서도 일반적인 논의는 전개돼 왔다. 당초 핵무기 사용은 미국 주요 도시에 대한 보복 타격에 한정됐지만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시작되자 선제타격이 허용됐다. 다만 2016년 5월 노동당 7차 대회 이후에도 핵무기 사용을 둘러싼 논란의 대상은 대(對)미국 전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획기적이었던 것은 2021년 1월 노동당 8차 대회다. 그 전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낙선을 확인한 김정은은 핵 선제 및 보복 타격 능력을 고도화하겠다고 선언하며 국방발전 5개년 계획의 우선 과제를 열거했다. 거기에는 대미 전쟁에 사용될 전략 핵무기뿐 아니라 대남 전쟁용 전술 핵무기와 극초음속 활공미사일 개발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에는 이 연설의 진의를 읽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김정은의 불가해한 연설은 북한이 독자적인 핵 독트린을 모색하는 모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 4월 4일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담화가 그 의미를 해설해 줬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40일이 되는 타이밍에 김여정은 “남조선이 우리들과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전쟁 초기에 주도권을 장악하고… 장기전을 막고 자기의 군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핵전투무력이 동원되게 된다. 무서운 공격이 가해질 것이며 남조선군은 괴멸, 전멸에 가까운 비참한 운명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위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남 전쟁에서 핵무기 선제 사용을 천명한 것이다.
주지하는 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2월 24일 개전 연설에서 러시아가 “여전히 가장 강력한 핵보유국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또 며칠 뒤 러시아 국방장관은 핵전력부대가 전투태세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푸틴 정부는 우크라이나에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개입, 즉 전쟁의 에스컬레이션(escalation)을 억지하려 했다. 북한 지도부가 그걸 놓칠 리 없었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러시아의 핵 독트린을 부분적으로 모방하고 개작(改作)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우크라이나와 달리 한반도에는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이 존재한다. 대남 전쟁과 대미 전쟁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래식 전력에서 열세인 북한군으로서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주한미군에 대항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전면 핵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위협이다. 하지만 그것이 위협임을 증명하려면 위협은 위협이 아닐 수 있다. 또 그런 핵 독트린이야말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탄두 소형화와 경량화를 위한 핵실험을 서두르게 하고 있다. 그것은 ICBM의 다탄두화, 전술핵무기 개발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한미 측이 연합 군사훈련을 펼친다면 2016, 2017년 한반도 긴장 사태가 재연될 것이다. 이것이 2023년 ‘2, 3월 위기설’이다. 안정적인 상호 억지가 이뤄질 때까지 한반도에 평화는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공포와 희망의 두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