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심이 깊은 사람도 때로 극심한 슬픔 앞에서는 평정심을 잃는다. 세계적인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도 그러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자 신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왜 그분은 우리가 번성할 때는 사령관처럼 군림하시다가 환난의 때에는 이토록 도움 주시는 데 인색한 것인가.”
평생 글을 써온 학자답게 그는 그러한 회의와 불신과 고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헤아려 본 슬픔’(원제 ‘A Grief Observed’)이라는 책이 그 결과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슬픔 앞에 정관사 A가 붙었으니 제목은 ‘헤아려 본 하나의 슬픔’이라고 해야 옳다. 슬픔의 일반론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슬픔의 기록이라는 의미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N W 클러크라는 가명을 사용함으로써 그것을 더 내밀한 기록으로 만들었다. 그가 저자라는 것이 알려진 것은 몇 년 후에 그가 죽고 나서였다.
그것은 아내를 잃은 사람이 느끼는 슬픔의 기록이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오십대 후반에야 결혼했다.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한 결혼은 3년 만에 끝났다. 그러자 그는 지옥처럼 입을 벌리는 슬픔에 압도당했다. 누구도 그를 위로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가 느끼는 격정적인 슬픔과 눈물이 그를 죽은 아내와 연결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떼어 놓았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아내의 죽음을 덜 슬퍼할 때 그녀를 가장 또렷이 기억했다. 너무 많이 울면 앞이 잘 안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눈물로 눈이 흐려져 있을 때는 어느 것도 똑똑히 보지 못한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