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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방범창 뜯고 반지하 80대 부부 구한 中동포… 폭우속 ‘시민 영웅’

입력 | 2022-08-11 03:00:00

수압 탓에 문 못 열고 갇힌 노부부… 2층 사는 中동포가 달려와 탈출 도와
턱밑까지 물 찬 도로서 고립된 여성… 인근 시민이 뛰어들어 헤엄쳐 구해
배수구 막은 쓰레기 치워 침수 막고, 급류 휩쓸린 차량서 운전자 구조도



10일 서울 동작구 성대시장 인근의 빌라 앞에서 중국 동포 임성규 씨가 8일 자신이 뜯어낸 반지하 주택 방범창을 가리키고 있다(왼쪽 사진). 이 빌라 2층에 사는 임 씨는 폭우 속에 노부부가 반지하에 갇히자 방범창을 뜯어내고 빗물이 들어찬 빌라에 뛰어들어 구했다. 오른쪽 사진은 8일 표세준 국방홍보원 TV제작팀 PD가 서울 서초구의 도로에 고립된 운전자를 구하는 모습(점선 안).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페이스북 캡처


“이 아저씨 아니었다면 우리 부부는 꼼짝없이 다 죽었을 겁니다.”

8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성대시장 인근 주택 골목의 반지하 집에서 남편과 함께 창문을 통해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이재숙 씨(86)는 폭우로 고립됐던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폭우 속에 방범창을 뜯어내고 방으로 뛰어들어 이 씨 부부를 구해낸 건 같은 빌라 2층에 사는 중국동포 임성규 씨(64)였다. 10일 만난 임 씨는 “사람이 물에 빠져 있는데, 망설일 이유가 있었겠느냐”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잇따르는 가운데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도운 의인들의 활약도 빛나고 있다.
○ 방범창 뜯어내 줘 간신히 탈출
이 씨에 따르면 당일 이 씨는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딱’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전력이 나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집 안에는 물이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출입문을 밀어봤지만 수압 탓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 밖은 이미 계단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물이 훨씬 높이 차올랐을 것이었다. 국가유공자인 남편은 거동이 불편했고, 자신도 최근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저는 상태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물은 더욱더 차올랐다. 유일한 탈출구인 창문은 금속제 방범창이 가로막고 있었다. “살려 달라”고 소리를 쳤다. 1층에 사는 집주인 아주머니가 달려와 방범창을 뜯어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때 임 씨가 달려와 방범창을 뜯어냈다. 이 씨는 “남편이 거동이 불편한데, 이분(임 씨)이 돕지 않았으면 그냥 돌아가셨을 것”이라며 “사람 목숨을 2명이나 살렸다”고 했다.

이 씨의 집은 이번 중부지방 집중호우의 와중에 반지하에 갇혀 안타깝게 사망한 여성 주민(52)의 집 바로 옆 빌라다.
○ “도움 청하는데 외면할 수 없었다”
8일 밤 표세준 국방홍보원 TV제작팀 PD는 침수된 서울 서초구의 왕복 6차선 도로 위 차량에 고립돼 도움을 청하는 운전자를 구했다. 당시 차량은 트렁크 부분만 위로 떠 앞으로 꽂힌 듯한 상태였고, 운전자는 트렁크 부분에 겨우 올라가 살려 달라고 외치며 도움을 구하는 상황이었다. 표 씨는 “도로에 (성인) 턱 끝까지 물이 찬 상황이었다”라며 “어머니 나이 대의 운전자분이 ‘사람 살려’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 주변에 있던 ‘주차금지통’(고깔 모양 플라스틱통)을 갖고 뛰어들었다”고 했다. 표 씨는 유소년 수영 선수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 씨의 용감한 구조는 행인이 촬영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려졌다.

도심 속 막힌 배수로와 빗물받이 덮개를 맨손으로 비워내 더 심한 침수를 막은 이들도 있다. 8일 ‘강남역 슈퍼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 남성은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맨손으로 빗물받이 덮개를 연 뒤 안에 쌓인 쓰레기 등을 건져내는 모습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9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 남성이 경기 의정부시에서 맨몸으로 쭈그리고 앉아 배수구를 막은 쓰레기를 치우자 순식간에 차오른 수위가 내려갔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경기 용인시에서는 이강만 고기3통장 등 3명이 8일 오후 하천 범람으로 차에 갇힌 운전자를 구조해 용인시장으로부터 모범시민 표창장을 받게 됐다. 이들은 차량이 급류에 휩쓸리자 다급히 접근해 뒷문을 열었다.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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