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년만의 물폭탄] 장애인가족 등 참변에 대책 마련 기존 주택은 10∼20년간 유예 방침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빌라 주택 앞에서 소방관들이 소방차를 동원해 지하에 가득 찬 물을 퍼내고 있다. 전날 이 빌라 반지하에 빗물이 계단 등으로 쏟아져 들어가면서 일가족 3명이 탈출하지 못하고 숨졌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8, 9일 수도권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가운데 반지하주택 주민들의 인명 피해가 잇따르자 서울시가 10일 “앞으로 서울에서 지하·반지하는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울시는 이날 ‘반지하 거주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하고 △(건축법 개정으로) 지하·반지하를 주거용으로 불허하도록 정부와 협의하고 △건축허가 시에도 불허하도록 각 자치구에 ‘허가 원칙’을 전달하며 △기존 건축물은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주거용으로 쓰지 않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하·반지하는 현재 거주 중인 세입자가 나간 뒤에는 건물주가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도록 인센티브 등을 통해 유도하겠다는 것이 시의 계획이다. 시는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서울 시내에서 지하·반지하 주택을 없애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반지하, 저지대 관악구에만 2만 가구… “폭우때마다 물바다 걱정”
서울시 “반지하 주택 불허”
계단으로 빗물, 하수구까지 역류… “순식간에 집안 잠겨” 주민 불안
1992년 배수시설 의무화했지만, 그 이전에 지은 집은 침수 무방비
‘주거용 반지하 퇴출’ 法개정 필요… 허가권 가진 구청 참여도 미지수
서울시가 10일 반지하 주택 대책을 내놓은 것은 고질적으로 되풀이되는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빌라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등 일가족 3명과 동작구 상도동의 반지하에 살던 50대 여성이 빗물이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 도마 오른 반지하 안전성
폭우 시 근처 다수의 주택에서 침수 피해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소방당국과 경찰에 구조·배수 요청이 폭증하면 구조도 쉽지 않다. 이번에 관악구에서 사망한 장애인과 그 가족 역시 구조 신고는 이뤄졌지만 일대 각 반지하 주택에서 신고가 속출하며 구조대 도착이 지연되면서 변을 당했다.
이번에 침수 피해를 겪은 반지하 주민들은 위험을 새삼 깨달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가족이 사망한 관악구 빌라 이웃의 반지하 주민 신모 씨(59)는 10일 집에 들어찬 물을 퍼내며 “지대가 낮아 빗물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데다, 하수구까지 역류하며 집안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다”며 “반지하가 이렇게까지 폭우에 취약할 줄 몰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반지하 주택은 2020년 기준 32만7320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61%에 해당하는 20만849가구가 서울에 있다. 이번 침수로 사망자가 발생한 관악구에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2만113가구가 몰려 있다.
○ 기존 대책 실효성 떨어져
앞서 정부가 여러 차례 반지하 침수 대책을 내놓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국토교통부는 영화 ‘기생충’의 영향으로 반지하 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2020년 초 전국 반지하 주택을 전수조사해 주거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지만 흐지부지됐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10일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 침수 피해 현장을 찾아 “건축물 설계관리 기준을 정비하는 등 실질적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서울시가 이번에 내놓은 대책 역시 법령 개정이 필요하거나 건축 허가 권한이 있는 각 자치구의 동참이 필요하기에 효과가 얼마나 날지는 미지수다. 윤혁경 ANU디자인그룹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반지하 주택 창문이 외부 바닥과 붙어 있는 경우 창문 높이만큼 방수막을 설치하는 등 단기적 해결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