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만5세 초등입학’이 논란을 거쳐 사실상 철회된 가운데, 교육의 국가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같은 취지에서 제시된 ‘초등전일제 학교’ 정책에 대해서도 교사들 반발 조짐이 일고 있다.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초등교사노조)은 지난 9일 성명을 내 “초등전일제 학교를 밀어붙이는 것은 만5세 초등입학 정책과 마찬가지로 아동 몰이해에서 온 오판”이라며 “아동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무책임한 정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박효천 초등교사노조 대변인은 “오전 9시에 등교하는 아이들을 오후 8시까지 가둬두겠다는 것은 아동 학대”라며 “어른들의 시각에서 아이들을 짐짝처럼 보관만 하겠다는 발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초등전일제 학교는 윤 정부 국정과제인 ‘국가교육책임제 강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다. 논란 속 추진이 어려워진 ‘만5세 초등입학’이 취학연령을 낮춰 아이들을 공교육에 빨리 진입시키려는 취지였다면, 초등전일제 학교는 초등 돌봄교실 운영시간을 오후 8시까지 확대하고 방과후학교의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방과후학교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활성화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원의 업무부담은 교육(지원)청이나 별도의 전담 공공기관을 운영해 최소화할 것”이라며 보완책을 마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장 초등교사 및 돌봄전담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만5세 초등입학과 마찬가지로 사전 의견 수렴 과정이 전혀 없었으며, 일선 교사들이 방과후학교 확대를 반대하는 이유도 교육 당국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한 초등학교의 교무부장 A씨는 “만5세 입학도 그렇지만 주체들과의 전반적 논의 없이 발표하는 정책은 또 ‘헛방’일 가능성이 높다”며 “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처럼 교육계 중차대하고 민감한 문제를 공론화 없이 터뜨리면 또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방과후학교같은 위탁 업무는 일반 교사들이 하지 않는다”며 “방과후를 늘리겠다면서 행정업무를 줄이겠다고 생색내는 것은 현장에 뭐가 중요하고 필요한지 정말 모르는 웃기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보완책으로 내놓은 행정업무 경감마저 실현 가능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시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실장은 “과거부터 돌봄·방과후 등을 정부가 추진하면서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교사들에게 업무가 부과돼 수업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사태가 반복돼 왔다”며 “‘경감’이라는 말 자체가 없앤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교사들에게 맡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봤다.
현장에서 초등 돌봄 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들은 오후 8시 연장 계획에 대해 ‘무리’라고 반발했다. 지난해 교육부의 초등 돌봄교실 운영 개선방안에 따라 올해 각 시도교육청이 기존 오후 5시에서 오후 7시까지 연장을 추진 중인데, 내년에 또 1시간을 연거푸 늘리는 것은 ‘과속’이라는 지적이다.
박 국장은 “수요도 많지 않기 때문에 늦게까지 남겨진 소수의 아이들은 불 꺼진 학교에서 고립감·박탈감을 느낄 것”이라며 “아이들이 저녁 시간 부모의 손길 밖에 있지 않아도 되는 방향을 국가적으로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서울 금천구 한 초등학교의 돌봄 전담사 A씨는 “오후 7시 연장으로 근무시간 2시간이 늘어나 7~8시간을 공복 상태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며 “1시간 더 늘어나면 우리도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오랜 시간 학교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들도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초등 돌봄교실 운영시간 확대는 시도별 여건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며, 오후 8시 돌봄은 맞벌이 등으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수요에 기반해 제공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현재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