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서로 존댓말을 하면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른 아침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가 주인이 붙여둔 손글씨를 읽었다. 머리 희끗한 편의점 주인은 평소 아이들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는 사람. 편의점을 나서는 손님에겐 어김없이 소리 내어 인사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을 때, 정문 바닥을 쓸던 아파트 경비원을 마주쳤다. 몇 동 몇 호에 사는 누구인지 주민들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경비원은 언제나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한여름 날씨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지하철을 탔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하철이 철교를 지날 때 차창으로 볕이 들었다. 아침 윤슬이 반짝이는 한강이 보여서 조그맣게 감탄할 때, 지하철 기관사의 방송이 울려 퍼졌다. “승객 여러분, 열차는 지금 한강을 지나고 있습니다. 잠시 창밖의 멋진 풍경을 보세요. 혹시 힘든 일이 있다면 열차에 모두 두고 내리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보다 좋은 아침 인사가 있을까. 인사를 건네받은 나도, 문밖을 나서던 모든 순간 마주 말해 보았다. 약간의 용기를 담아 소리 내어 인사할 때마다, 마음이 볕 든 것처럼 따듯해져 웃게 됐다. 모두들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긴 밤을 지나온 사정이야 저마다 다를 테지만, 새로 시작하는 오늘만큼은 좋은 하루이기를 모두 같은 마음으로 바랄 것이다. 좋은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편의점 주인과 아파트 경비원과 지하철 기관사와 약사가 가르쳐 주었다.
먼 옛날 어느 고대 철학자는 ‘인간이 있는 곳에는 친절의 기회가 있다’라고 말했다던데, 먼 훗날에도 ‘친절’은 사람과 사람이 마주해야만 행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이 새삼 아름답다. 우리에겐 하루에도 여러 번 친절할 기회가 있다. 기회를 붙잡는 건 나의 몫. 친절해라. 자리에 앉아 업무 메일을 회신하던 나는 끝에 여덟 글자를 적어 보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마음을 보낸 나도, 마음을 받은 그도. 오늘은 좋은 하루를 보낼 것이다.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