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화]⑤ [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에필로그〉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길 美, 장례식부터 맞춤형 돌봄 지원 軍유족 ‘골드스타 패밀리’로 예우 한국엔 유족 전담조직 사실상 없어
전담 경찰관이 유족 에스코트 올해 5월 12일 미국의 순직 경찰 추모 주간인 ‘내셔널 폴리스 위크’ 첫날. 워싱턴 인근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 거동이 불편한 유가족이 도착하자 전담 경찰관이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다. 다른 경찰관들도 캐리어를 끌어주거나 유가족을 호위하고 있다. 내셔널 폴리스 위크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귀가하는 날까지 가족마다 배정되는 전담 경찰관의 에스코트를 받는다. 워싱턴=히어로콘텐츠팀
“유가족을 돌보는 전담 조직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소방관 유가족)
“정부 조직을 늘리는 건 쉽지 않아요. 재단이나 단체를 만들려고 해도 근거와 예산이 필요합니다.”(정부 관계자)
국가보훈처는 매달 보훈 대상자 수를 공개한다. 순직 군인과 경찰, 소방관 등 ‘제복 공무원’ 유가족으로 보훈처에 등록된 사람은 1만5630명(7월 기준). 보훈처는 물론이고, 국방부 경찰청 소방청과 민간 사단법인 등이 유가족 예우와 처우 업무를 맡고 있지만 전담 조직의 기능이 약한 탓에 유가족 지원이 체계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은 군 소방 경찰 모두 별도의 추모 기간을 정해 촛불추모제 등 다양한 행사를 성대히 개최한다. 전사자 유가족을 ‘골드스타 패밀리’라 부르며 예우하고, 이들을 위한 24시간 상담 전화를 운영하는 것 역시 국내에선 찾아볼 수 없는 문화와 시스템이다.
반면 한국은 유가족 지원을 전담하는 전국 단위 단체나 재단이 사실상 전무하다. 사단법인 성격의 유족회 등이 있지만 조직이 작고 예산도 적어 맞춤형 돌봄에 나설 여력이 없다. 실제 순직 소방관 유가족 모임인 ‘마음 돌봄 캠프’는 소방청 직원 1명이 홀로 나서 기업 후원을 유치하며 마련됐다. 켈리 린치 NFFF 이사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유가족을 치유하기 위해선 그들의 마음을 잘 아는 전문가로 조직을 구성해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美 “슬픔엔 시간표 없다” 유족 24시간 상담… 韓, 치유 시스템 없어
‘같은 아픔’ 만남 통해 소통-치유… 유족으로 구성된 ‘돌봄전담팀’도
韓, 전담조직 없고 보상금도 적어… “정부 지원 한계… 비영리단체 필요”
올해 5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가평화경찰추모식’에서 경찰관들이 유가족들에게 경례를 하고 있다.
미국의 순직 경찰 추모 주간인 ‘내셔널 폴리스 위크’ 나흘째인 올해 5월 15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전국에서 유가족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모식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우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함께 참석한 부인 질 바이든 여사도 이날 남편의 발언을 경청했다. 바이든 여사는 군 유가족 지원 비영리기관 ‘TAPS(Tragedy Assistance Program for Survivors)’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등 제복 공무원 유가족 지원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유가족들은 자신들을 향한 대통령 부부의 진심 어린 행보에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 “우린 당신들에게 빚졌습니다”
폴리스 위크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경찰유가족돌봄재단(COPS)의 지원을 받았다. COPS는 왕복 항공료부터 숙소 등 모든 비용을 제공한다. 또 고인과 친분이 있는 전담 에스코트 경찰관을 배정해 주간 내내 유가족을 에스코트하도록 한다.올해 폴리스 위크엔 순직 경찰 유가족과 친구, 동료 등 미 전역에서 6000여 명이 참석했다. 한 주간 대통령 참석 추모행사는 물론이고 순직자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는 촛불추모제, 자녀들을 위한 경찰 체험과 ‘키즈 캠프’ 등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졌다. 전미순직소방관재단(NFFF)도 비슷한 추모 행사를 매년 10월 4일간 열고 있다.
올해 6월 3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강원소방본부가 주최한 순직 소방관 추모식이 거행되고 있다.
정부가 유가족에게 주는 보상금도 한국과 미국은 크게 차이가 난다. 미국은 경찰이 순직하면 약 5억 원을 유족에게 지급하고 주별로 추가로 지원한다. 반면 한국 경찰의 ‘일반 순직’ 보상금은 1억 원, ‘위험 순직’ 보상금은 3억 원에 불과하다.
○ “슬픔에는 시간표가 없다”
군 유가족은 TAPS가 ‘슬픔에는 시간표가 없다’는 기조로 구축한 ‘헬프라인’도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유가족이 아무 때나 전문가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긴급 상담전화다. 한국엔 이런 시스템이 전무하다. 한 순직 군인 유가족은 “군으로부터 들은 건 보건소 상담을 받으면 비용을 보전하겠다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미국은 군 유가족을 예우하는 극존칭도 널리 사용한다. 순직 유가족은 ‘골드스타 패밀리’, 자살 유가족은 ‘화이트스타 패밀리’, 부상·실종자 가족은 ‘레드스타 패밀리’로 부르는 식이다. 한국은 제복 공무원 유가족을 예우하는 별도의 호칭이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유가족을 직접 지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처럼 비영리단체로 유가족 지원을 일원화하고 전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이윤수 부산외국어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는 아무래도 유가족을 불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며 “이들을 편견 없이 전문적으로 지원하고 돌보기 위한 재단, 단체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소윤이 아빠… 제복 헌신-유가족 잊지 않을게요”
‘남겨진 사람들’ 시리즈 독자들 공감
보훈처 “제복 공무원 예우 강화”
2017년 강원 강릉 석란정 화재로 순직한 이영욱 소방경의 사이버 추모관에 아내 이연숙 씨가 남긴 글. 순직소방관추모관 홈페이지 캡처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5회에 걸쳐 보도한 ‘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시리즈를 경험한 독자들은 자신의 몸을 던져 국민을 구한 제복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남겨진 사람(가족)들에겐 깊은 위로와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다.
독자들은 “제복 공무원의 헌신과 유가족의 고통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 독자(아이디 hana****)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가족들은 용기 잃지 마시길 당부드린다”는 댓글을 적었다. 다른 누리꾼(seo****)은 “그저 잘 이겨내고 계셔서 감사하고, 가족분들의 희생 잊지 않겠다”고 썼다. 박선민 KAIST 인문사회학과 초빙교수는 “소방관 남편을 둔 저로서는 감정이입이 안 될 수가 없었다”며 “순직 소방관 자녀를 위해 온라인 교육 등 뭐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마음 돌봄 캠프’(유가족 모임)에 대해서도 후원 방법을 묻는 연락이 이어졌다.
취재에 응한 유가족들은 “뜨거운 격려가 삶의 밑거름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박현숙 씨(45)는 “‘우리 모두가 소윤이 아빠’라는 응원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가족을 잃고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제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독자들은 ‘남겨진 사람들’을 치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내놨다. 한 누리꾼(tric****)은 “심리 지원이 꾸준히 이뤄질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어떤 독자는 “마돌캠처럼 유가족들이 연대할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순직소방관추모관 홈페이지를 방문해 추모글을 남기기도 했다.
국가보훈처도 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암, 희귀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도 순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제복 공무원 예우 범국민 캠페인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119 신고 접수부터, 현장 출동이 끝난 후까지 이어지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original.donga.com/2022/firefighter/part01)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승건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
▽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
히어로콘텐츠팀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