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20)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다시 불붙은 미국 ‘경기침체’ 논란
미국 경제가 알쏭달쏭하다. 최근 며칠 동안 국내총생산(GDP), 고용, 물가 등 주요 경제 지표들이 공개됐지만, 금융 시장과 경제 전반에 안개가 자욱하다. 미국이 경기침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쏟아진 상황에서 미국 고용이 호조를 보이면서 경기 전망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경기침체’와 ‘완전한 고용’이 동반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발(發) 금리 인상이 경기를 억눌렀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41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소비자물가를 낮추기 위해 ‘분노의 질주’를 펼치고 있다.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나 올렸다. 하반기에 금리를 더 인상하겠다고도 했다.
금리가 올라가면서 경기는 급속도로 식었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2분기 GDP 증가율이 ―0.9%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1분기(―1.6%)에 이어 2분기마저 GDP가 후퇴하면서 미국 경제가 ‘기술적 경기 침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기를 비틀게 만든 인플레이션도 돌아섰다. 노동통계국은 10일 지난달 미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8.5% 상승했다고 밝혔다. 전월 9.1%보다 낮은 수치다.
통상 2개 분기 연속 GDP가 역성장하면 경기침체로 불렀지만, 이번에는 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실업률이 이렇게 낮은데 무슨 경기침체냐”는 것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경기 침체 국면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고, 경제학 바이블인 ‘맨큐 경제학’의 저자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직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침체에 빠졌다고 한다면 나는 매우 놀랄 것”이라고 했다.
물가 오름세가 꺾였다는 점도 하나의 반박 근거로 꼽히고 있다. 물가가 정점을 찍은 만큼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낮춰 경기를 되살리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미국 경기가 둔화될 수 있지만 침체에 빠지진 않을 것”이라며 전문가들의 경기침체 의견을 반박했다.
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 경기침체란 무엇인가
미국 경기침체의 공식 판정은 경제학자 연구 모임인 ‘전미경제연구소’(NBER)에서 한다. NBER에 속한 경제학 교수 8명이 ‘경기순환위원회’(BCDC)를 열고 경기침체 여부를 결정하는데 민간기구라 회의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공표를 언제 할지 등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논란을 일으킨 것은 이들이 정한 추상적인 경기침체의 정의다. NBER은 경기침체를 ‘경제 활동의 현저한 감소가 경제 전반에 확산되고 몇 달간 지속할 때’로 규정하고 있다. 경제 활동이 얼마나 감소해야 현저한 것인지, 몇 달 지속돼야 하는지 등이 정해진 바가 없다.
그렇다보니 최근에는 ‘위키피디아’에서 경기침체의 정의를 두고 싸움까지 붙었다. 이용자들이 자신이 찾은 정보로 기존 내용을 계속 수정해 버린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으로 이용자들이 서로 내용을 고칠 수 있다. 논란이 커지자 위키피디아 측은 이달 3일까지 경기침체 내용을 수정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에는 경기침체 결정을 내리기가 더욱 어려울 것 같다. 실업률이 낮은 상황에서 경기가 침체되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총 12번의 경기침체가 있었는데, 이 기간 실업률은 모두 6%를 넘어섰다.
인플레이션이 이처럼 높은 상황에서 실업률이 낮게 나오는 것도 드문 일이다. 물가가 높을 때는 공격적인 금리 인상 때문에 경기가 가라앉고, 실업률이 늘어난다.
연구소도 현재의 논란이 당황스러운 모양새다. 1978년 NBER 창립 멤버이자 현재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홀 스탠퍼드대 교수는 지난달 26일 “경기 침체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밝혔다.
미 일리노이주 샴버그의 한 식당에 채용 팻말이 걸려 있다. 최근 미국에선 경기침체가 언급되고 있지만, 노동 시장은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리노이=AP 뉴시스
● 선언자들이 보는 지표들
NBER 측은 미국이 1, 2분기 GDP가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우리는 GDP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생산과 고용과 소득 등 여러 수치를 전반적으로 본다”고 했다.
그렇다면 NBER은 구체적으로 어떤 통계를 보고 있을까. 블룸버그가 NBER이 경기침체를 결정하기 위해 확인하는 월별 지표 6가지를 2일 소개했다. 개인소득과 고용 및 비(非)농업 급여, 개인소비지출, 제조 및 무역 판매, 가사 고용, 산업생산지수 등의 올해 6월 수치다.
6월 한 달 동안 미국의 개인소득은 주춤했다. 0.3% 감소했다. 고용 분야는 ‘역대급’인 상황. 블룸버그 기사가 나오고 발표된 7월 고용 수치까지 포함하면 미국은 올해 32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코로나19 사태로 잃었던 일자리 숫자를 벌써 회복했다. 블룸버그는 “급여 증가율은 둔화됐지만 긍정적인 편”이라고 언급했다.
개인소비지출도 괜찮은 편이다. 올해 상반기 중 한 달을 제외하고는 계속 증가했다. 6월에는 전월 대비 0.1% 상승했다. 소비자 지출은 미국 경제 성장에서 70%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미국을 ‘소비의 나라’로 부르는 이유다.
제조와 무역 분야는 다소 부진했다. 블룸버그는 “공급망 손상과 소비자 지출 둔화에 따른 주문 감소, 달러 강세에 따른 수출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가사도우미, 정원사 같은 가사 고용은 1분기에는 꾸준히 상승했지만 2분기에는 4월과 6월에 감소했다. 산업생산지수는 연초 몇 달 간 우상향을 보이다가, 최근에는 그래프가 평평해졌다. 6월에는 약간 감소했다. 모두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지표다.
수치만 놓고 보면 좋고 나쁨이 반반이었지만, 그래프가 전반적으로 평평해지거나, 꺾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경제학자들이 전망을 어둡게 보는 이유다.
미국의 비(非)농업 분야 고용은 올해 6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블룸버그 기사
● 자동차 판매와 경기침체 전조 현상
미국의 올해 1분기 GDP 수치(―1.6%)가 부정확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국내총생산(GDP)은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의 합계다. 이론적으로는 국가 내에서 발생한 소득의 총합인 국내총소득(GDI)과 동일해야 한다. 일단 생산을 하면 누구에게든 소득(분배 측면)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분기 미국의 GDI는 GDP와는 반대로 1.8% 증가했다.
보라안 아루오바 미 메릴랜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는 미국 경제가 1분기에 전혀 위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며 “생산(GDP)이 소득 데이터(GDI)에 가깝게 수정될 것이라 믿는다”고 NYT에 전했다.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도 “두 숫자는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제공한다”며 “GDP는 경기침체를 나타내고 GDI는 경제 성장을 나타낸다. GDI는 노동 시장과 더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경제가 성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언급했다. 실제 GDI에는 GDP에 교역 조건에 따른 변화와 무역손실을 고려한다. 통계 조사 방식도 달라 두 수치가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교역 조건에 있어서 달러 강세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자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를 읽는 것이 어려워졌다고 털어놓는다. 캐런 다이넌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는 여전히 이상한 시기에 있기 때문에 경제를 읽는 것이 평소보다 어렵다”고 했다.
그는 자동차 판매를 예로 들었다. 자동차 판매는 경기를 판단할 때 쓰이는 신뢰할만한 신호 중 하나다. 소비자들이 직장이 잃을 것을 걱정할 때 가장 먼저 구매를 미루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공급망 문제가 생기면서 데이터를 해석하기 어려워졌다.
다이넌 교수는 “향후 몇 달 안에 차가 많이 팔린다면 소비자신뢰지수의 회복을 의미할까, 아니면 단순히 (공급망 개선으로) 차량 구입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할까”라고 NYT에 말했다. 자동차 판매가 늘어도 소비자 심리가 좋아져서인지, 아니면 차량 구입이 꼭 필요했는데 공급망 문제로 못 샀던 사람들이 한 번에 몰린 것인지 확실치 않다는 뜻이다.
미국 금융 시장에서는 이미 경기침체 전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년 만기 국채 금리와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역전되더니, 2000년 이후 최대치로 벌어졌다. 보통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인플레이션이나 상환 위험 때문에 금리가 높다.
시장에 불안 심리가 팽배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쉽게 설명해 친구한테 100만 원을 빌려준다고 치자. 5년 빌려줄 때보다 한 달 빌려줄 때가 마음이 더 편할 것이다. 기간이 짧으면 이자도 적게 받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하는 사업이 위태로워 보여서 한 달도 못 버틸 것 같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자를 더 많이 요구하지 않을까.
짧은 기간에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 장기 채권을 가진 사람에게 기회손실이 발생해 채권 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있다. 손해를 보고서라도 중간에 팔겠다는 사람이 늘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금리가 오르면 보통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또, 채권 만기가 길수록 수익률 변동에 따른 가격 변동폭도 커진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과거 미국의 13차례 경기 침체 중 10차례가 금리 역전 이후 찾아왔다.
소비자 심리도 급랭한 상태다. 6월 미국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50.2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오일쇼크 후폭풍이 상당했던 1980년 5월(51.7)보다도 낮았다. 100을 기준점으로 이보다 높으면 향후 소비 심리가 강하고, 낮으면 약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경제학자들은 코로나19 이후 발생한 공급망 병목 현상으로 경제를 읽는 것이 어려워졌다고 털어놓는다. 동아일보DB
● 코로나19보다 무서운 비관론 바이러스
이는 당연한 수순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빠르게 올렸다. 공급망 병목과 전쟁이라는 공급 측면을 어찌할 수 없으니, 수요를 억제하는 방법을 택했다. 물건값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위축되도록 만든 것이다. 대출이 있는 사람은 이자를 더 내야하니 쓸 돈도 줄어들었다.
인플레이션이 7월 고점을 찍고 소폭 내려왔지만, 하산의 시작인지 숫자가 구름 위를 떠다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름값은 꽤 떨어졌지만, 계약 기간이 긴 주거비(렌트비) 등이 쉽게 빠지지 않아 물가가 천천히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경기를 훼손하더라도 금리 인상의 기조를 바꿔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경기침체에 대한 논란이 치열하지만, 사람들의 심리가 한쪽으로 기울면 어떻게 될까.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미룰 것이고, 사람들은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대출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는 은행 전화를 받게 될 수도 있다. 팽창하던 경제가 수축한다.
이코노미스트는 ‘경기침체는 돈도 돈이지만 기분(mood)의 문제다’라는 글에서 “금융 시장의 붕괴 없이, 재정적 혼란 없이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 경기침체는 마치, 갑자기, 어느새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유가나 통화정책이 방아쇠가 될 수는 있지만, 결국 사람들의 심리에 따라 경기침체가 결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경기는 통상 하강할 때 속도가 붙는다. 공포 심리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주식하고 똑같다. 이코노미스트는 “파국적인 금융 위기의 깊숙한 곳에서는 워런 버핏을 제외하고는 돈을 쓸 배짱과 수단이 있는 사람이 드물 것”이라고 했다.
경제는 숫자보다 심리의 영역에 가깝다. 현재의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를 기반으로 수입과 지출이 거대한 사슬처럼 묶여 돌아간다. 월급날을 믿고 장도 보고 옷도 사고 한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경제 성장(GDP)의 70%가 ‘소비’로 결정된다. 현재의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고 비관론이 전염병처럼 퍼지면, 경제는 한 순간에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신중한 소비자가 지출을 줄이고 고용과 투자가 감소하면 비관론의 초기 발생이 입증된다”며 “충격은 거대한 사슬의 연결 고리를 약화시키고, 감정의 전환을 촉진한다”고 했다.
미국 뉴욕의 한 상점에서 고객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2분기 연속 GDP가 하락하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 스트라이샌드 효과와 바나나에 대한 걱정
백악관까지 나서서 경기침체를 극구 부인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경기침체로 갈 상황이 아닌데(고용이 좋아서) 비관론 때문에 경기침체 늪에 빠질까봐 염려하는 것이다.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Recession’(경기침체)이란 단어를 3월 4번, 5월 9번, 6월 6번, 7월 26번 언급했다. “경기침체까지는 안 갈 것”, “경기침체가 가더라도 덜컹거리는 수준의 ‘준 연착륙’(softish landing)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WSJ은 28일 “바이든 행정부 누구도 ‘스트라이샌드 효과’(Streisand effect)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경제적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는 정부가 오히려 부정적 뉴스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트라이샌드 효과는 온라인상에서 어떤 정보를 숨기거나 삭제하려다가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돼 처음 기대와 반대로 정보의 확산을 가져오는 역효과를 의미한다.
경제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마저 정부의 언급 때마다 쏟아지는 뉴스에 노출돼 ‘지금이 경기침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이 생각난다. 제목만 들으면 코끼리부터 떠오른다. 프레임의 힘이다.
1978년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이 인플레이션과 싸울 때 코넬대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칸이 태스크포스(TF)를 맡았다. 당시 칸은 “가격을 통제하지 못하면 깊고 깊은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는데, 칸과 보좌진들은 경기침체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윗분들로부터 한소리를 들었다. 다시는 경기침체를 꺼내지 말라는 지시도 받았다.
칸은 기자들과의 다음 회의에서 재치를 발휘했다. “국가가 45년 만에 최악의 바나나(경기침체)를 가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퍽퍽하게 말했다. WSJ은 지난달 28일 “백악관이 경제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유리한 설명을 마케팅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어 실망스럽다”며 “칸의 유산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기침체를 생각하지 않으려 해보라’라는 기사를 2일 게재했다. WSJ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물가 상승을 더 유발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경기침체에도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WSJ 기사
● 경기침체냐, 아니냐가 왜 중요한가
지금이 경기침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일부 조짐들은 나타나고 있다. 먼저 고용에서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력을 줄이고 있다. 5일 WSJ에 따르면 빅테크 기업인 오라클이 최근 수백 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주식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는 업무 도구인 슬랙과 이메일로 직원 23%에게 해고 통보를 하겠다고 밝혔고, 마이크로소프트, 트위터, 쇼피파이 등도 인력을 줄이겠다고 언급한 상태다. IT 회사 이외에 미국 최대 고용주인 월마트 역시 최근 직원 일부를 줄였다.
지난달 고용(52만8000명) 중 레저 및 호스피탈리티 산업의 일자리가 9만6000명으로 가장 높았는데, 휴가철이 지나고 이 추세가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외신을 보면 현지 레스토랑, 호텔 등에서 아직까지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는 내용이 많기는 하다.
소비 동력도 떨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6월 미국의 개인 저축률은 5.1%로 2007년 경기침체 수준까지 떨어졌고, 개인 신용카드 부채는 2007년 수준을 넘어섰다. 하반기에 금리가 더 오르면 가계 부담이 커질 것이 분명하다.
연준과 일부 전문가들이 얕은 경기침체를 예고하고 있지만, 경미한 경기침체도 경제에 상처를 준다는 점이 문제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실업률이 2%포인트 증가했을 때 약 300만 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는다.
바다 건너 일이라고 남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블룸버그는 2일 “1975년, 1982년, 1991년, 2009년 글로벌 경기침체가 있었는데, 각각의 경우 미국의 경기침체가 앞서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이 불황에 빠진 이후에는 항상 글로벌 경기침체가 뒤따랐다는 이야기다.
● 인플레이션은 나쁘지만, 실업률은 더 나쁘다
경기침체는 짧게 스쳐지나가더라도 긴 후유증을 안긴다. 한 연구에 따르면 경기침체 시기에 대학을 졸업한 학생은 경기가 좋을 때 사회생활을 시작한 학생보다 수년 동안 적은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스웨스턴대와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1976~2015년 미국 인구 조사 데이터를 활용해 경기침체 기간 미국에서 취업한 근로자가 사회생활 초기에 평균 대비 11% 임금을 덜 받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수익 감소는 10년 간 지속되며 1년 급여의 60% 가량의 누적 손실을 일으킨다”고 했다. 이 같은 영향은 고등학교 중퇴자나 비(非)백인 노동자에게 특히 컸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직장 잃는 슬픔보단 덜할 수 있다.
NYT는 경제분야 국제학술지 JMCB(Journal of Money, Credit and Banking)에 곧 게재될 논문을 지난달 20일 소개했다. 연구는 2005년부터 2019년까지 141개국 150만 명을 대상으로 한 갤럽 조사를 활용했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은 실업률이 1%포인트 증가했을 때, 인플레이션이 1%포인트 늘어났을 때보다 슬픔이나 육체적 고통을 호소할 가능성이 9~13배 더 높았다. 사람들은 실업률이 늘어나는 시기에 자신의 삶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인플레이션이 늘어날 때의 반응보다 6배나 더 암울했다.
NYT는 “응답자들은 자신의 답이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편견이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 연구의 장점”이라고 평했다.
스탠포드대에서도 2003년 비슷한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논문은 실업률이 1%포인트 증가하면 인플레이션이 1%포인트 늘어나는 것보다 사람들이 5배 더 불행해진다고 밝혔다.
당장은 체감되지 않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모든 쇼핑객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실업률은 잘리기 전까진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웃이나 가족 또는 내가 직장을 잃게 된다면 가격표가 눈에나 들어올까.
NYT는 20일 “인플레이션이 높을수록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금리를 거세게 올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실업률이 높을수록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신중하게 움직이는 편이 나은 선택”이라고 전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경기침체의 위험을 일정부분 감수해야 한다는 연준과 경제학자들의 의견은 과연 합리적일까. 혹시나 처방전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김성모 기자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