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도 뭇매 맞은 “일본이 형님뻘” 망언 ‘일본인보다 부유한 한국인’ 현실 됐나 위기에 유독 강한 한국경제 유전자 미중 ‘디커플링’은 위기이자 큰 기회
천광암 논설실장
1868년 5월 조선 해안을 기웃거리던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 아버지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은 쇄국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더 재촉한다. 그해 일본은 조선과는 정반대로 전면적인 개방과 근대화에 나선다. 메이지유신이 그것이다. 급속한 개혁으로 서구열강을 따라잡은 일본은 조선을 강제병합하고 1945년 패망 때까지 폭압적 지배 아래 두게 된다. 1868년부터 1945년까지의 77년만큼, 한 시기의 선택으로 두 나라의 부침이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렸던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광복 77주년. 1945년 해방으로부터 1868년까지 시곗바늘을 되돌린 만큼의 물리적 시간이 흘러 2022년 광복절 아침이 왔다. 이제 한국은 경제 활력이나 생활수준 면에서 일본을 전혀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만한 위치가 됐다. 앞의 77년을 생각하면 뒤의 77년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변신이다.
일본 자민당의 한 정치인은 지난 4일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는 형제국. 확실히 말해서 일본이 형님뻘”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대다수 일본인들의 반응은 세상 물정 모르는 헛소리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한일관계와 관련해서 일본의 시사 잡지에 실리는 기사를 봐도 ‘한일 역전(逆轉)’이라는 화두가 단연 눈에 띈다.
1990년까지만 해도 한일 사이에 놓인 경제력 격차는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강’으로 여겨졌다. 당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11배, 1인당 GDP는 3.8배였다. 하지만 지금은 GDP가 2.7배, 1인당 GDP가 1.1배 수준까지 좁혀졌다. 실질적인 구매력을 감안하면 1인당 GDP는 이미 한국이 앞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이 지난 30년간의 성과를 이렇게 갈랐을까. 많은 일본 경제전문가들이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대형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력과 내성(耐性)을 꼽는다. 일본은 고통을 수반하는 구조조정을 하는 대신 재정 확대와 금융 완화 등 ‘진통제’ 대책으로 일관했다. 반면 한국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사업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위험을 무릅쓰면서 과감한 신규 투자와 신시장 개척에 나섰다는 것이다.
일례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일본의 GDP는 7% 감소했으나 한국은 4% 증가했다. 2007∼2010년 기간 중 일본의 간판기업인 도요타의 판매 대수는 95만 대가 줄어든 반면 현대·기아차의 판매 대수는 178만 대가 늘었다.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신흥국 시장의 문을 과감히 두드린 결과였다. 삼성전자가 소니를 완전히 따돌리고 ‘가전(家電) 왕좌’에 오른 것도 외환위기 직후다. 외환위기 국면에서 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현재 진행되는 글로벌 경제의 복합 위기는 1998년과 2008년의 위기에 비해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인플레이션과 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만으로도 유례가 드물거니와, 미중 간의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은 간발만 헛디뎌도 ‘거대한 크레바스’에 추락할 수 있는 대지진에 비견할 만한 격변이다. 미중 디커플링이 진행되는 한, 한국은 CHIP4(미국·일본·대만+한국) 동맹 참여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 상황에 수시로 처하게 될 것이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