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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반성’ 반복한 일왕의 전후 77주년 [특파원칼럼/이상훈]

입력 | 2022-08-17 03:00:00

역대 총리 언급하던 ‘반성’ 아베 시절 사라져
유명무실 비판 있지만 그나마 남은 평화 보루



이상훈 도쿄 특파원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지 50주년을 맞았던 올해 5월 15일, 나루히토(德仁) 일왕은 기념식에서 “앞선 대전(제2차 세계대전)에서 비참한 지상전의 무대가 됐고, 많은 이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어버렸다”고 언급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 전쟁에서 지상전 무대가 된 오키나와는… 오랫동안 미국 통치에 놓였다”고 말한 것과는 단어 선택이 달랐다.

일본의 과거사를 모른 채 기시다 총리 기념사만 들으면 평범한 전쟁이 있었고 일본 땅이 억울하게 타국에 지배당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루히토 일왕의 말까지 들으면 무모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부족하게나마 생각하게 한다. 올 7월 93세로 세상을 떠난 오키나와전 법정 증언자 긴조 시게아키 전 오키나와기독대 학장은 “일본군이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를 외친 뒤 주민들에게 수류탄을 나눠줬다. 수류탄 불발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돌과 죽창으로 가족과 이웃을 죽였다”고 집단자결을 증언했다. 잘못된 신념을 가진 국가가 자국민과 이웃나라에 얼마나 끔찍한 피해를 끼치는지 77년 전 일본이 보여줬다.

2차 대전 패전 77주년을 맞은 15일, 나루히토 일왕은 전몰자 추도식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매년 이어오는 표현이다. 일본 정치권에는 역사를 직시하면 굴욕을 당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상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 이런 가운데 일왕은 공식 석상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을 언급하는 몇 안 남은 인물이 됐다.

사실 일왕가의 패전일 반성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2차 대전 패전 70주년이던 2015년 8월 15일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 언급이 패전일 반성의 시작이었다. 2015년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가 미일 방위협력지침과 안보법제를 개정하면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석 개헌’을 강행했던 해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이후 역대 총리가 패전일에 직접 언급하던 반성이라는 단어는 아베 전 총리가 두 번째로 취임한 2013년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일왕이 ‘깊은 반성’을 처음 언급한 데 대해 일본 언론들은 “전후(戰後) 70년을 맞아 전몰자 추도와 평화 계승에 위기감을 느낀 증거”라고 지적했다. 평화헌법의 강력한 옹호자였던 아키히토 전 일왕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 일본 평화의 최후 보루가 됐다.

일각에서는 헌법상 정치 개입이 철저히 금지된 상징적 존재인 일왕의 메시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지적이 있다. 반성 언급과 상관없이 집권 자민당과 우익 세력들은 한국을 향해 사과 피로증을 운운하며 민낯을 드러낸다. 일왕의 발언에 논란과 해석을 삼가는 일본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정부와 국민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야 할 반성이 형해화됐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그나마 일왕의 발언이 있어서 올해 8월 15일에도 ‘깊은 반성’이라는 무게감 있는 단어가 일본의 신문, TV, 인터넷에서 굵은 활자와 자막, 또렷한 육성으로 흘렀다. 일본 국민들로서는 ‘우리가 마지막 반성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는 위안을 할 수도 있었겠다. 퇴위한 왕의 추도사를 되풀이하는 것 말고는 과거 반성과 사죄를 할 줄 모르고 기대하기도 어려운 현실은 씁쓸하다. 하지만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사회에서 1년에 한 번은 뒤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남은 것에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져 본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