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벨리니 ‘동산에서의 고통’, 1458∼1460년경.
지도자에게 고통과 고뇌는 필수다. 선택과 결정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로마 지배하에서 가장 억압받고 차별받던 유대인 민중의 메시아 운동을 이끌던 지도자였다. 그는 최후의 만찬 후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고뇌에 찬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성서에 나오는 이 장면은 기독교 미술의 인기 주제였고, 16세기 베네치아파의 창시자 조반니 벨리니도 이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화면 속 예수는 황량한 돌산에 올라 무릎을 꿇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다가올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슬퍼하면서. 강 건너에는 제자 중 한 명인 유다가 로마 병사들을 이끌고 예수를 체포하러 오고 있다. 반면 아래에서 망을 보던 제자들은 잠들어 버렸다. 스승이 기도하는 동안 깨어 있으라고 했지만, 육신의 피곤을 이기지 못한 듯하다. 한 사람은 누워서 완전히 곯아떨어졌고 두 사람은 앉아서 졸고 있다. 불과 몇 시간 전 최후의 만찬에서 스승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이들이다. 예수를 위로하는 건 먹구름 위에 나타난 천사뿐이다.
벨리니는 기법과 주제 표현에서 실험적인 선구자였다. 달걀을 용매로 사용하는 전통적인 템페라 대신 유화물감을 실험했고, 엄숙한 종교화를 목가적이고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색채도 풍부하고 매혹적이다. 새벽하늘의 복숭앗빛이 예수와 두 제자의 분홍색 튜닉과 어우러지면서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신비한 분위기를 만든다. 벨리니는 평생 하늘빛의 변화를 연구해 자신만의 화법으로 발전시켰는데, 실제로도 이 그림은 이탈리아 미술에서 새벽빛을 묘사한 최초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가 사용한 감미로운 분홍색은 훗날 복숭아 스파클링 와인 ‘벨리니’를 탄생시켰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