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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외화송금’ 은행권 중징계 불가피…은행은 억울하다?

입력 | 2022-08-18 10:58:00

ⓒ News1 DB


국내 은행을 통한 수상한 외화 거래 규모가 초기 추정치인 7조원을 훌쩍 상회한 8조5000억원으로 나타난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조만간 은행권 전반으로 검사 범위를 확대한다.

금감원은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로부터 입금이 빈번하거나 신생 업체가 대규모 자금을 이체하는 등 ‘이상거래 징후’가 뚜렷하게 보였음에도 은행들이 포착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할 예정이다. 여기에 외국환거래법상 증빙 서류를 제대로 확인했는지를 비롯해 송금한 업체와 영업점 직원과의 유착 관계가 있었는지도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이다.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업무 정지를 비롯한 중징계가 불가피하다.

은행권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서류상으로 문제가 없으면 돈을 보내줄 수밖에 없는 데다, 의도를 가지고 서류를 위조했어도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심거래보고(STR)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2일까지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은행권 이상 외화송금 거래 규모는 65억4000만달러, 약 8조5600억원 규모다. 금감원의 초기 추정치인 23억7000만달러(7조300억원)을 훨씬 웃돈 것이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이상 외화거래 규모도 지난달 27일 중간 발표 대비 2000만달러 늘었다.

앞서 금감원은 △신설·영세업체의 대규모 송금거래 △가상자산 관련 송금거래 △특정 영업점을 통한 집중적 송금거래 등을 이상 거래로 규정하고 신한·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외국환 거래 은행에 2021년 1월~2022년 6월 사이 유사 거래가 있었는지 자체 점검을 지시한 바 있다.

이들 은행의 의심거래는 신한·우리은행에서 나타난 유형과 흡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은행에서 적발된 거래는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이체된 자금이 국내 법인 또는 개인의 계좌를 거쳐 국내 신생 무역법인 계좌로 입금된 후 해외 법인으로 송금되는 구조다.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김치프리미엄을 노린 환치기를 의심하고 있다. 우리·신한은행 영업점에서 송금한 업체가 다른 은행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돈을 보낸 경우도 있었다.

금감원은 오는 19일까지 신한·우리은행에 대한 현장검사를 마무리하고, 자체점검 결과 거래 규모가 큰 은행에 대해서 검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현재로선 국내 주요 은행이 모두 검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검사에선 두 은행과 마찬가지로 외국환거래법상 은행들이 입증 서류를 제대로 확인했는지, 제3자 송금 시 관계 당국인 한국은행에 신고했는지 등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특정금융거래정보법상 신원확인(CDD), 의심거래 보고(STR), 고액 현금거래 보고(CTR)의 적정성 역시 점검 사항이다.

금감원은 은행들의 이상 거래 대처가 미흡했다고 보고 있다. 신생 또는 영세 무역업체가 거액의 자금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보내는 ‘비상식적’인 거래가 발생한 만큼, 충분히 이상 거래 정황을 포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4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 외환 담당 부서장을 상대로 화상회의를 열고 이상 외화거래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무역 거래 실적도 없는 신생 업체가 송장 한 장만 가지고 거액의 외화를 송금해달라고 요청하는데, 그런 부분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거래했다는 게 문제”라며 “외국환거래법상 입증 서류를 확인하라는 건 단순히 대조만 해보라는 게 아니라 무슨 목적의 거래인지 확인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 은행·영업점별로 이상거래 규모가 달랐던 만큼, 금감원은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에서도 문제점을 찾고 있다.

해당 은행 영업점 직원과 업체 간의 유착 관계도 검사 대상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필요하다면 영업점과 업체가 주고 받은 이메일을 제출하도록 요청할 것”이라며 “업체와 유착이 있었던 것인지, 특이한 거래가 있었는데 은행 본점이 왜 몰랐는지에 대해서 검사를 통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검사 결과 위반 사실이 드러날 경우 무거운 제재가 불가피하다.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한 기관은 정도에 따라 업무 정지와 과징금 처분을 받게 된다. 특금법 위반 시 기관 제재는 물론 임원도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금감원 측은 “검사결과 확인된 위법?부당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엄중히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나은행의 사례가 가이드라인이 될 전망이다. 금감원은 지난 5월 하나은행에 외국환거래법 위반을 이유로 과징금 5000만원과 정릉지점 업무의 일부를 4개월 정지하는 제재를 내렸다. 당시 모 법인은 하나은행 정릉지점을 통해 약 3000억원의 자금을 해외 가상자산거래소로 보냈다. 현재 은행권에서 발생한 이상거래와 비슷한 수법이었다. 금감원은 당초 업무정지 기간을 6개월로 건의했으나, 현재 FIU에서 특금법 위반에 따른 추가 제재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소폭 감경됐다.

◇ “서류상 문제없으면 거래할 수밖에” 은행권 ‘억울’

은행권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서류상으로 흠결이 없으면 송금 처리를 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의심스럽다고 여기고 중단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상적인 업체였다면 골치가 아파진다”며 “해당 업체가 외국환거래법상 위반 사항이 없는데 왜 송금을 거절하냐고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생 법인이 갑자기 100만달러를 보낸다고 하면 당연히 의심스럽다”면서도 “해당 법인이 ‘어렵게 거래를 따냈다’, ‘앞으로도 꾸준히 거래가 발생할거다’라고 말하면 영업점 입장에선 거절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의심거래 보고의 ‘적정성’도 명확치 않다고 토로한다. 특금법상 금융회사는 금융거래 상대방이 자금세탁행위 등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FIU 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배포한 의심거래 사례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은행이 ‘알아서’ 그리고 ‘잘’ 보고해야 한다. 은행 관계자는 “STR은 은행이 설정한 기본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이뤄진다”며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뚜렷하게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