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시장 꽁꽁… 늘어나는 재고
《‘경기침체 공포’ 현실로… 삼성전자 재고 자산 50조 첫 돌파
기업 창고에 중장기 재고가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재고 자산은 경기 변동을 읽는 선제적 지표다. 산업 현장에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 유럽, 중국 등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의 수요 위축이 직접적 원인이다. 완제품 주문량이 급감하면서 가공품이나 부품 협력사까지 연쇄적으로 재고 부담에 허덕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재고 자산은 올 상반기(1∼6월) 사상 처음으로 50조 원을 넘어섰다. 장부에 ‘빨간불’이 들어온 기업들이 일제히 공장 가동률을 낮추면서 하반기(7∼12월) 생산 및 투자는 더 축소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2분기(4∼6월)부터 재고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경영진 상시 회의에도 재고 문제가 가장 우선적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이어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현실화하면서 주요 기업들의 중장기 재고가 눈에 띄게 쌓이고 있다. 전방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완제품은 물론이고 부품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의 재고 소진이 모두 느려졌기 때문이다.
주요 기업들의 상반기(1∼6월)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가전·TV·디스플레이·석유화학·패션 등 소비 시장 위축의 직격타를 입은 업계에서 일제히 재고자산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가전업계의 경우 최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동시 위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7∼12월) 주요 수요처인 미국 ‘블랙프라이데이(11월 25일)’ 분위기도 예년 같지 않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 주요 거래처들은 보통 8월부터 블랙프라이데이 시즌 대비 물량을 주문하는데, 올해는 최소 한두 달 이상 주문이 미뤄질 분위기다”고 우려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생산, 유통, 소비의 순환이 빨라지는 게 중요한데 지금은 그 속도가 현격히 더뎌지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섬유·용기 등 소비재의 바탕이 되는 석유화학과 패션업계 재고도 늘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상반기 재고자산은 전년 동기 대비 40.5%, 한섬은 11.4% 증가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상품군 특성상 경기가 악화하면 씀씀이가 줄어들기 쉽다. 통상 가을겨울이 대목인데도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따라 소비가 다시 줄어들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을 낮춰 재고 수준을 조절하고 중장기 투자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TV 등 영상기기 생산라인 가동률을 1분기(1∼3월) 84.3%에서 2분기 63.7%로, 휴대전화는 81.0%에서 70.2%로 각각 낮췄다. 가동률 조정이 불가능한 반도체업계는 웨이퍼당 생산량을 높이고 고부가가치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등 기술력 확보를 통한 수익성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글로벌 시장 전체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라며 “호황기를 넘어가면서 매출이 줄어들더라도 수익성을 지킬 수 있도록 치열한 수율 경쟁에 돌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