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활동가들이 지난 11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쓰비시 자산 특별 현금화 명령에 관한 대법원의 신속한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2022.8.11/뉴스1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을 강제 매각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사법부의 현금화 결정이 미뤄졌다. 19일 대법원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특허권 2건에 대한 특별현금화명령 사건을 조금 더 들여다보겠다며 최종 판단을 늦춘 것. 일단 우리 정부는 현금화 절차가 연기됨에 따라 한일 관계 최대 뇌관으로 꼽히는 강제징용 배상문제를 풀기 위한 시간은 벌었다며 내심 안도하는 모습이다. 다만 피해자 측은 당장 현금화를 요구하며 이날 대법원 결정에 반발한 가운데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한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를 수용할 수 없다며 여전히 맞서고 있어 향후 입장차를 좁히기 쉽진 않을 전망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미쓰비시가 특허권 2건에 대한 특별현금화명령에 불복해 낸 재항고 사건에 대해 ‘심리불속행’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심리불속행은 대법원이 사건을 더 따져보지 않고 원심을 유지하겠다고 기각하는 결정으로,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사건 접수 4개월 안에 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4월 19일 접수된 이번 사건은 이달 19일이 결정시한이었다.
강제징용 피해자인 김성주 할머니(93)와 양금덕 할머니(93)는 미쓰비시가 운영하던 공장에서 일했지만 임금을 받지 못해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2018년 11월 대법원은 미쓰비시 측이 각각 1억2000만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미쓰비시 측이 지급하지 않자 두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에 보유한 상표권 2건과 특허권 2건에 대한 압류 명령 및 매각 명령을 법원에 각각 신청했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상표권과 특허권에 대한 압류 명령을 확정했고, 같은 달 대전지법도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상표권·특허권 2건씩을 매각해 두 할머니가 각각 2억973만1276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며 매각 명령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미쓰비시는 현금화에 반발해 소송에 나섰지만 올해 1·2월 2심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에 미쓰비시는 재항고한 바 있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이미 2018년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지난해 압류명령도 확정한 만큼 매각명령에 대한 판단을 달리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날 심리불속행 결정을 내리지 않은 건 상당한 외교적 파장이 예상되는 만큼 시간을 갖고 충분한 심리 및 합의를 거쳐 결론 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날 대법원 판단 후 피해자를 지원하는 이국언 일제 강제동원 시민모임 이사장은 “당연히 심리불속행 기각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매우 아쉽다”며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무자의 일부 자산을 압류하고 매각하자는 간단한 사건에 심리가 더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내심 안도하는 모습이다.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 시한폭탄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일단 정부가 나서서 해법을 마련할 시간은 벌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광복절 경축사(15일)와 취임100일 기자회견(17일)에서도 거듭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