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동아광장/박상준]위험 수위를 넘긴 한국의 ‘진영 정치’

입력 | 2022-08-20 03:00:00

다양한 의견 공존, 열린 토론 찾기 힘든 시대
진영 내 권력과 의견 다르면 배신자로 낙인
우리 정치 ‘야만의 시대’ 언제 끝나는가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의 사후 시바타 가쓰이에와 일본 열도의 패권을 다투었다. 임진왜란 9년 전의 전투에서 도요토미에게 패한 시바타는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오다의 누이이기도 한 시바타의 아내는 이전 결혼에서 얻은 세 딸을 남기고 남편을 따라 자결했다. 전국시대 최고의 미녀로 유명했던 어머니를 닮아 세 딸 모두 외모가 아름다웠다고 한다. 첫째인 자차는 도요토미의 측실이 되어 아들 히데요리를 낳고 오사카성의 실권을 장악했다. 둘째인 하쓰는 지방 영주의 정실이 되었고, 셋째인 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과 결혼해 에도성(지금의 도쿄)의 안주인이 되었다.

천하의 패권을 두고 도요토미와 도쿠가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의 승패에 따라 언니와 동생 중 하나를 잃어야 하는 둘째 하쓰는 두 가문의 공존을 위한 협상에 진력을 다했지만 전쟁을 멈출 수 없었다. 둘째의 애타는 노력도 헛되이, 오사카성이 함락되었을 때 둘째가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언니의 며느리이자 동생의 딸이었던 센히메뿐이었다.

둘째가 오사카성과 에도성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힘없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사별한 후 자녀가 없던 그에게는 움직일 수 있는 군대가 없었다. 무사들의 존경을 받는 오다의 조카이면서 도쿠가와 안주인의 언니였지만 그가 만일 첫째처럼 어느 성의 실권을 쥐고 있었거나 남자였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천하를 다투는 싸움에서 중립이나 중도란 있을 수 없었다. 주군의 뜻에 거슬리는 의견을 개진한 자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처참한 종말을 맞이해야 했던 야만의 시대였다.

검수완박 이슈로 세상이 한참 시끄러울 때 만난 한 정치학자는 한국의 정치 환경이 전근대 시대로 퇴화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나는 그 노학자의 혜안에 언제나 감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근대 이전에는 권력의 상실이 죽음을 의미했다. 따라서 권력 다툼은 목숨을 건 투쟁이어야만 했다. 조선 시대에도 다른 견해를 가진 당파가 공존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19세기 들어 일당 독주 체제가 굳어졌다. 20세기 초 서양에서 공부한 선각자들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쟁취하고, 선거에서 패배해도 목숨을 잃지 않고 다음 선거를 준비할 수 있는 서양의 정치 제도에 매우 놀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들이 꿈꾸던 대로 한국은 식민지 시대와 독재 시대를 끝내고 드디어 민주 사회를 이루었다. 그러나 민주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다양한 의견의 공존, 열린 토론을 통한 여론의 형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그 노학자의 진단이었다.

그 노학자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마치 오사카성과 에도성처럼 각 진영이 높은 벽을 세우고 진영 밖에 있는 자들은 공존할 수 없는 적이라고 선언하는 모양새다. 권력을 잡으면 권력을 남용하고, 권력을 잃으면 보복에 시달리고, 그래서 권력이 있을 때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성을 쌓아 두려고 한다.

진영을 장악한 이들은 진영 내 권력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매몰차게 잘라낸다. 박근혜 시대에는 친박을 넘어 진박이 나왔고 유승민이 진영 밖으로 몰렸다. 문재인 시대에는 문파를 넘어 대깨문이 나왔고 금태섭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윤석열 시대에는 윤핵관과 이준석의 다툼이 거세다. 앞서 민주당에서는 박지현이 이른바 개딸들의 표적이 됐다. 유승민, 금태섭, 이준석, 박지현에게 잘못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견을 말하는 자를 내부 총질을 한다며 몰아세우면 누가 권력에 거스르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나 일본의 정치에도 문제가 많지만 트럼프와 대적한 공화당 의원이나 아베에 대적한 자민당 의원이 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은 들어보기 어렵다.

노학자의 한탄을 들으며 나는 에도와 오사카에 성을 구축하고 어느 한쪽이 궤멸될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던, 주군과 다른 뜻을 개진하면 배신자로 몰살하던 그 야만의 시대가 떠올랐다. 근대 문명의 민주주의는 인간의 야만성을 순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야만의 유산이 남아 있다. 박근혜에서 문재인으로, 문재인에서 윤석열로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우리 정치의 야만성은 여전하다. 이 야만의 시대는 언제 끝나는가?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