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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美서 첫 공개강연…“韓 대북정책 일관성 있어야”

입력 | 2022-08-21 08:27:00


이낙연 전 국무총리. 2022.6.7/뉴스1 ⓒ News1

미국에 체류 중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20일(현지시간) 북핵 문제와 관련, “한국은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에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애틀랜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초청으로 미 조지아주(州) 애틀랜타 더 1818클럽에서 이뤄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관련국의 과제’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지금 북한 비핵화 문제는 북한과 미국에 맡겨져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6월부터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방문연구원으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 전 총리가 미국에서 공개 강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 총리는 “북한의 핵개발이 주로 미국에 의한 안보불안과 피해의식에서 비롯됐고, 그것을 해소할 당사국도 미국이라고 북한이 인식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그 결과가 지금의 교착이고 북한의 핵능력 강화다. 이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로 가장 큰 이익을 볼 나라도 한국이고, 평화가 깨졌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당할 나라도 한국이다. 게다가 북한을 가장 잘 아는 나라는 한국”이라고 했다.

이를 위한 과제로 △외교적 역량 구축 △대북 정책의 일관성 △한국의 역량과 정책에 대한 미·중 등 관련국가의 신뢰 확보 등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외교적 역량 구축에 대해 “지금의 역량으로는 부족하다”며 “역량을 기르고, 국민의 정치의식도 대외문제를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고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북 정책의 일관성에 대해선 “이제까지는 정권이 바뀌면 대북정책도 근간부터 바뀌곤 해왔다. 정치도 대북 문제를 중심으로 양극화돼왔다”며 “그래선 북한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대북정책의 근간을 세우고 양극화를 개선해야 한다. 정치권이 학계 및 시민사회와 함께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이어 “한국의 역량과 정책에 대한 미국과 중국 등 관련국가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면서 “그러자면 우선 미국의 이해와 협력이 절실하다. 김대중-클린턴의 선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북한을 향해 “북한의 핵개발은 김일성 시대부터 시도돼 수십 년 동안 계속됐다. 그것은 안보불안과 피해의식에서 출발했을 수 있다”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핵은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다. 북한 스스로를 위해서도 제약이 된다”고 진단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그는 북한이 핵개발을 하면서 국가경제 발전이나 주민생활 향상을 희생시킨 것은 물론 국제적 고립을 자초해 외국과의 무역 및 경제협력을 제약하게 됐고, 국가경제의 발전을 더욱 옥죄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중국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됐다. 그것은 향후 국가로서의 존재방식에 부담을 주게 됐고, 당장 한반도를 신냉전의 구도로 끌고 갈 수도 있다”며 “북한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국제사회의 기준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지렛대를 확보하려 하지만, 그것은 관련국가의 협상의지를 꺾고, 북한의 국제적 이미지를 더욱 호전적으로 만든다”며 “북한은 협상이 기대대로 진전되지 않으면 초강수를 두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곤 했다. 그런 방식으로 상대국가의 관심을 끌 수는 있겠지만, 신뢰를 얻진 못한다는 것을 북한이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반적 기준에 근접하는 방식을 구사하면 국제사회가 새롭게 주목할 것”이라면서 “북한은 핵개발로 질주하며 고립과 빈곤을 계속할 것인지, 핵개발을 멈추고 미국 등 국제사회와 대화하며 개방과 발전으로 나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미국 등 관련국가의 노력이 동반돼야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후자의 선택이 옳다고 나는 믿는다”고 했다.


이 전 총리는 미국을 향해선 “북한을 제대로 알고 현실노선의 정책을 펴야 한다. 지금 미국은 북한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태도가 경직돼 있다”며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보수세력 일각의 주장은 무지의 반영이었고, 경제제재를 강화하면 북한이 투항할 것이라는 역대 행정부의 정책은 과신이다. ‘리비아 모델’까지 공개거론하며 압박하면 북한이 비핵화에 응할 것이라는 발상은 오만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불량국가’이고 ‘악의 축’이기 때문에 대화상대가 아니라는 믿음은 일방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미국은 현실주의 정책으로 세계질서를 바꿔 왔다. 그런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금 미국은 잃고 있다”며 1970년대 중국과의 수교, 1980년대 소련과 대화를 통한 냉전 붕괴 및 데탕트 구축, 1990년대 베트남과 수교, 2000년대 이후 이란과의 핵 합의 및 쿠바와의 수교 등을 일일이 거론했다.

이 전 총리는 “북한에 대해서도 미국이 현실주의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 주도의 제재와 봉쇄는 북한의 비핵화를 도운 것이 아니라 북한의 고립과 폐쇄, 핵개발의 가속화와 중국의존 확대를 불러왔다. 그렇다면 북한의 고립을 개방으로 전환시켜 북한의 안보불안과 피해의식을 줄이는 것이 비핵화와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과도한 중국의존을 완화하고 대외 협력관계를 다변화하도록 돕는 것이 신냉전 구도를 예방하고 북한의 미래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며 “그것이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한반도 종전선언을 미국이 동의하지 않은 것도 몹시 아쉽다. 만약 종전선언을 미국이 도와 실현했더라면, 북한 비핵화에 도움을 줬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김정은-트럼프의 싱가포르 합의에 명시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는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원한다는 관측이 있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길은 아니다”며 “한반도는 평화를 더 확고하게 정착시켜 가면서 언젠가 점진적으로 통일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중국과 일본, 러시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하길 촉구했다.

(워싱턴=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