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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가뭄이 드러낸 수천 년 유적

입력 | 2022-08-22 03:00:00


올 6월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구에서는 모술댐이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지면서 3400년 전 ‘자키쿠(Zakhiku)’로 추정되는 고대 도시의 유적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자키쿠는 기원전 1550년부터 기원전 1350년까지 약 200년간 지금의 이라크 북부 지역과 시리아 대부분을 지배했던 미탄니 왕국의 중심지다. 19세기에 독일인 슐리만은 고대 그리스 문화권의 트로이와 미케네 유적을 발굴했고 영국인 레이어드는 고대 아수르(아시리아)의 니나와(니네베) 유적을 발굴했다. 바로 이 니나와가 한때 미탄니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8월 들어 중국도 유례없는 가뭄을 겪고 있는 가운데 양쯔강이 말라 바닥이 드러나면서 약 600년 전인 명나라나 청나라 때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 3개가 발견됐다. 양쯔강은 강이라기보다는 바다라고 할 만큼 크다. 양쯔강은 해구(海丘)처럼 바닥에서 7m 높이로 솟아 있는 바위 언덕을 품고 있었다. 이번에 발견된 불상은 그 바위 언덕 맨 위쪽의 솟은 부분을 깎아 석굴과 함께 만든 것이다. 강을 지나는 배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 최악의 가뭄으로 스페인에서는 ‘과달페랄의 고인돌’로 불리는 5000년 전 거석 수백 개가 서부 카세레스주의 발데카냐스 저수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 켈트족은 유럽의 대서양 연안을 따라 아일랜드로부터 영국 콘월, 프랑스 브르타뉴,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까지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그런 흔적 중 하나가 거석(巨石) 문화다. 영국에는 스톤헨지, 프랑스에는 카르나크 열석이 있다. 과달페랄의 고인돌은 스페인의 스톤헨지라고 불릴 만큼 신비스러운 모습을 지녔지만 1963년 프랑코 독재 치하에서 인공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안타깝게 물에 잠겼다.

▷이탈리아에서는 포강의 수위가 70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피에몬테에서 고대 마을의 유적이 나타났다. 롬바르디아 올리오강에서는 청동기 시대 목재 건축물 토대가 나왔다. 로마 티베르강에서는 네로 황제가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리 유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르웨이에서는 빙하가 녹으면서 철기 시대 양털 옷과 로마 시대 샌들이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이 바빠졌다.

▷강이 마를 때 강바닥 돌에 사람들이 연도와 이름을 새겨넣은 기근석(饑饉石)이란 게 있다. 엘베강과 다뉴브강 곳곳에서 기근석이 보일 정도이다 보니 수천 년 전 수백 년 전 문화 유적도, 인공저수지에 묻은 유적도,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때 침몰한 군함과 누군가 몰래 유기한 시신의 유골까지 오만 것이 다 드러난다. 한 길 물속에 비밀이 참 많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