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중국의 외교 진영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강대강 외교 대치전선을 이루고 있는 만큼 향후 누가 중국 외교단을 이끌지에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2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3연임을 확보하고 젊은 지도자들로 지도부를 교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소식이 알려진 이후 한동안 공개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후 지난 18일 중국 톈진에서 다케오 아키바 일본 국가안전보장 국장과 회담을 한 게 전부였다.
이에 후임으로 예상되는 왕 부장이 양 위원의 자리에 오를지는 아직 미지수인 상황이다. 왕 부장은 올해 68세다. 중국은 이른바 칠상팔하(七上八下) 원칙이 있다. 5년마다 열리는 당 전국대회 전까지 67세까지는 상무위원(7명), 정치국원(25명)이 될 수 있지만 68세 이상은 은퇴한다는 원칙이다.
SCMP는 양안(중국·대만)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중 관계가 악화하는 가운데 왕 부장에게 은퇴 규범에 대한 예외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 세계의 중국 외교관과 관측통들은 현 시점에서 중국에 왕 부장의 경험과 인맥, 외교기술은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왕 부장이 지난달 시 주석의 핵심적 지위를 추켜세운 것 역시 당 최고 권력 그룹에 진입하기 위한 사전 행동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의 전문가는 “왕 부장이 최근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동기부여와 과잉행동을 한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펠로시, 대만, 미국, 일본에 대한 평소보다 강경한 행동과는 별개로 시 주석을 돋보이게 하는 왕 부장의 발언은 국내 상황을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SCMP는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악화한 데 대해 양 국원과 왕 부장이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을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왕 부장이 공산당 정치국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세계안보기구의 갈 루프트 공동소장은 양 국원과 왕 부장의 동시 은퇴는 중국 외교에 공백을 남기며 중국 대외관계 정책 연속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루프트 소장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따른 미·중 갈등과 중국의 잇따른 군사적 압박은 왕 부장의 은퇴를 연기하는 이유를 만드는데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중 군사 및 기후 변화 (소통) 채널의 단절로 외교 채널이 양국 관계를 지속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했다. 또 왕 부장은 11월 미·중 정상회담이 있을 경우 이를 다룰 준비가 가장 잘돼 있다고 설명했다.
루프트 소장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국 전략에서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 구축에 진전을 이뤘다며 중국이 외교적으로 반격할 의도가 있다면 왕 부장의 경험과 인맥은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왕 부장의 경쟁자들 역시 현재로서는 탄탄한 입지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SCMP는 설명했다.
왕 부장의 최고 경쟁자로 꼽혔던 지난 6월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지낸 쑹타오(67)는 한직으로 밀려났다. 류제이(64) 공산당 중앙 대만판공실 주임도 유력 경쟁자로 꼽힌다.
친강 주미 중국대사, 셰펑 외교부 부부장,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 류젠차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류하이싱 국가안전위 부주임 등도 거론된다. 르위청 전 외교부 부부장(59)도 한때 왕 부장의 경쟁자로 꼽혔지만 지난해 6월 좌천됐다고 SCMP는 전했다.
소우랍 굽타 중국미국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은 “왕 부장은 중국의 가장 세련된 외교관”이라며 “그는 많은 문제가 있는 양국 관계와 관련해 수석 관리자 역할을 했다”고 했다. 굽타 연구원은 현재 미중 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인 대만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어 왕 부장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필립 르 코레는 왕 부장의 나이가 승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중국이 양 국원의 후임에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이데올로그(이론적 지도자)를 선택해도 놀랍지 않다고 했다. 다만 중국 정치는 언제나 놀라운 일이 가능했다며 왕 부장의 승진 가능성이 여전히 있음을 시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베이징의 정치학자는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10년 만에 가장 큰 인적 쇄신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당대회 개막 직전까지 후보들 간 물밑 기싸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즈취주 미국 버크넬대 중국연구소 즈췬주 소장은 “누가 중국의 최고 외교관으로 양 부장과 왕 부장을 이어받든 서방 국가들과 강력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재건하는 것은 새로운 외교정책팀에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