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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승 5패’ 덤덤했고 ‘0승 12패’ 담담하다

입력 | 2022-08-23 03:00:00

시즌 승리없이 최다패전 삼성 백정현
첫승 3년 걸리고 선발승까지 10년… 오랜 부진에 마음 다스리는 법 깨쳐
작년 최고성적 냈지만 오히려 차분… 지금 힘들지만 공부거리는 많아져
후반기 투심 늘리니 피홈런 없어



삼성 제공


“지난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올해 이런 시기를 겪고 있지 않나 싶다. 지난해 안 좋았다면 그 이유를 찾아서 좋아지게 만들었을 거다. 그런 (기회를 놓쳤다는) 면에서는 지난해가 더 안 좋았던 것 같다.”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난 백정현(35·삼성·사진)은 “더 잘하려면 객관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수정해야 한다. 감정이 올라온다고 결과가 좋아지지는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백정현은 지난해 14승 5패, 평균자책점 2.63을 기록했다. 다승은 공동 4위, 평균자책점은 단독 2위였다. 그 덕에 지난해 스토브리그 때 삼성과 4년간 최대 38억 원에 계약하며 자유계약선수(FA) ‘중박’을 치기도 했다.

반면 올해는 이날까지 0승 11패 평균자책점 6.02가 전부였다. 백정현은 21일 안방 NC전에서도 패전투수로 이름을 올리면서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에 승리 없이 12패만 기록한 투수가 됐다.

백정현은 “결과가 나쁜데 괜찮다고 하면 안 좋게 보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제 마음은 괜찮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보니 마음이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안 힘들까’ 공부하면서 마음을 컨트롤하는 법을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래서 야구가 수행(修行)하기에 좋은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고 항상 다른 일이 생긴다. 중요한 건 어떠한 상황에서든 마음은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백정현에게 ‘괜찮다’는 표현이 ‘지금 이대로도 좋다’는 뜻인 건 아니다. 백정현은 “옛날에는 원하는 대로 안 되고 힘든 상황이 생기면 안 좋은 줄만 알았다. 올해도 속상할 상황이지만 개선하고 공부할 게 넘친다는 게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다”고 말했다.

물론 ‘마음공부’만 하는 건 아니다. 백정현은 “퓨처스리그(2군)에 있는 동안 후배들에게 ‘너는 커브를 어떻게 던지냐?’, ‘너는 투심 어떻게 던지냐?’ 하고 물어보면서 그립(공을 쥐는 방식)을 많이 수정했다”고 말했다.

실제 효과를 보고 있는 건 투심 쪽이다. 백정현은 전반기 15경기에서 28.1%였던 투심 구사 비율을 후반기 3경기에서는 34.6%로 높였다. 투심은 보통 땅볼을 유도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구종이다.

투심이 늘어나면서 백정현은 홈런을 맞지 않게 됐다. 백정현은 전반기에 73과 3분의 1이닝을 던지는 동안 홈런을 19개 맞았다. 4이닝마다 하나씩 홈런을 맞았던 것. 후반기 15와 3분의 2이닝 동안에는 아직 피홈런이 없다. 그러면서 전반기에 6.63이었던 평균자책점도 후반기에는 2.30까지 내려왔다.

지난해 백정현에게 ‘커리어 하이’ 시즌을 선물한 건 무심(無心)에 가까웠다. 2007년 삼성에 입단한 백정현이 첫 승을 거두는 데는 3년, 첫 선발승을 기록하는 데는 10년이 걸렸다. 선발로 자리를 잡아 나가는가 싶던 2020년에는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11경기 등판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팀 에이스로 거듭나고도 “어릴 때 이런 성적을 냈으면 더 많은 감정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그냥 기분이 좋은 정도”라고 이야기하던 백정현이었다.

‘커리어 로’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이번 시즌도 마음가짐 자체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백정현은 “그렇다고 ‘져도 된다’는 마음으로 공을 던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건 꼭 말씀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