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위력적인 트럼프식 ‘편 가르기’ 정치 ‘한국은 포퓰리즘에서 벗어났나’ 성찰할 때
장택동 논설위원
미국 대선이 끝난 지 1년 반이 넘게 흘렀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에게 대선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위스콘신주 하원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 결과 취소를 요구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대선 당시 거리에 무인 투표함을 배치해 부재자 투표 용지를 수거한 것이 위헌이라는 주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대선 무효 주장을 또다시 꺼내든 것이다. 11월 중간선거에 출마하는 공화당 후보들 가운데에도 절반 이상이 ‘대선이 사기였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기밀자료를 가지고 나왔는지를 놓고 연방수사국(FBI)이 그의 별장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지만 그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압수수색 이후 진행된 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층의 57%는 ‘오늘 경선이 진행되면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지난달보다 오히려 4%포인트 오른 수치다. 요즘 트럼프에게 하루 100만 달러 이상의 정치자금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보도도 있다. 트럼프 수사에 항의하기 위해 중무장한 채 FBI 지부에 진입하려던 남성이 사살되는 등 지지자들은 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트럼프가 심어놓은 포퓰리즘, 이른바 ‘트럼피즘’이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음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포퓰리즘의 요소들 가운데 특히 ‘편 가르기’ 전략을 적극적으로, 효율적으로 이용해왔다. 비(非)백인 여성 의원들을 향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쏘아붙이고,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지지자들은 “진짜 국민”이라고 추켜세우는 식이다. 국민을 둘로 나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짜 국민’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정치를 통해 그는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2020년 대선에서 47%를 득표했다.
이는 미국 사회의 분열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트럼프 재임 시절부터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 극단적인 양극화는 성숙한 민주주의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민주주의의 롤 모델 역할을 해온 미국에도 포퓰리즘과 편 가르기 정치는 이렇게 위협적이다.
한국은 어떨까. 포퓰리즘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선거를 올해 두 차례 치르면서 각 정당과 정치인들은 성별과 나이, 지역, 소득 수준 등을 기준으로 국민을 나눈 뒤 자기편으로 설정한 그룹을 향해 집중적으로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로 인한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도 모두 말로만 통합을 외쳤을 뿐, 진지하게 치유를 모색하는 과정은 보이지 않았다.
“포퓰리스트는 자신이 국민을 통합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실제 모델은 시민들을 최대한 분열시키는 것”(얀베르너 뮐러 ‘민주주의 공부’)이라고 했다. 앞으로 여권은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야당은 권력을 되찾기 위해 언제든 포퓰리즘을 소환할 가능성이 있다. ‘당신만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 포퓰리즘을 경계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