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 AP/뉴시스
“감염병 위협에 맞서는 차세대 과학 지도자의 멘토가 되고 싶습니다.”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사령탑 역할을 했던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82)이 12월 퇴임 의사를 밝혔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부터 조 바이든 현 대통령까지 7명의 대통령을 보좌했던 그가 은퇴 시점을 특정한 것은 처음이다.
CNN 등에 따르면 파우치 소장은 22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경력의 다음 장을 추구하기 위해 12월에 모든 직책을 내려놓을 것”이라며 미 연방정부의 영역 밖의 일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NIAID 소장으로 얻은 지식은 과학 및 공중보건 발전에 활용하고 차세대 과학 지도자를 돕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파우치 소장은 코로나19 초기에 하루 서너 시간만 자면서 2000통이 넘는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과학을 경시하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극심한 갈등을 빚으며 전세계적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치료에 말라리아 약을 쓰자고 주장하거나 인체에 살균제를 주입하자는 식의 황당한 주장을 할 때마다 이를 정면으로 비판해 최고 권력자의 눈 밖에 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종종 그를 해고하겠다고 위협했고 트럼프 지지자나 친트럼프 성향의 야당 공화당 의원과도 척을 졌다.
그는 이를 두고 “거짓말을 퍼뜨리려는 사람들에게 과학에 기반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적이 된다”고 토로했다. 유명 배우 브래드 피트는 그를 지지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의미로 시사코미디쇼 ‘새터데이나잇라이브(SNL)’에서 파우치를 흉내냈다.
파우치 소장은 1940년 뉴욕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후손으로 태어났다. 코넬대 의대를 졸업한 후 1968년 NIAID가 속한 국립보건원(NIH)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984년 NIAID 소장으로 발탁된 후 현재까지 38년간 코로나19,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조류독감, 에볼라, 지카바이러스 등 각종 전염병 대응을 지휘했다. 특히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 ‘PEPFAR’를 통해 2100만 명의 생명을 구한 공로로 2008년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미 민간인의 최고 영예로 꼽히는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 간호사 겸 생명윤리학자인 부인과 세 딸이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