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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반중 ‘분노 버튼’을 누른 것은

입력 | 2022-08-23 17:00:00

[글로벌 이슈]



한국 쇼트트랙 대표 황대헌 선수가 올 2월 베이징 올림픽 남자 1000m 준결선에서 중국 선수 2명을 추월하는 모습. 이 과정에서 황 선수가 반칙을 했다며 실격 판정이 내려졌고, 이후 오심 논란이 불거져 국내에 반중 여론이 일었다. 뉴시스


“중국어 하나만 제대로 해도 먹고살 걱정 없다”는 말이 통하던 시절에 필자는 대학입시를 치렀다. 당시 중어중문과는 ‘핫하게’ 떠오르는 학과였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몇 년이 흘러 중국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던 때였다. 20여 년이 지난 요즘은 달라졌다. 여러 대학에서 중어중문과가 폐과되고 중국 관련 교양강좌는 폐강되고 있다. 중국어를 배우는 중고교생도 줄어 지난해 중고교 교사 임용고시에서 중국어 과목 선발 인원은 ‘0명’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수교 당시엔 우리와 규모가 비슷했던 중국 경제는 30년 새 한국의 10배로 커졌다. 한중 무역 규모 역시 47배로 늘어 중국어 능통자를 찾는 수요가 많아질 법한데 중국어의 인기는 식어버렸다.

며칠 전 동아일보가 2030세대를 대상으로 중국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달라진 세태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본은 물론 북한보다도 중국을 더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팀은 한중 MZ세대 10명씩 총 20명을 심층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한국 청년들의 말에는 중국을 바라보는 3가지 관점이 녹아 있었다.

우선, 중국이 강대국인 건 맞지만 ‘강대국의 국격’을 갖췄다고는 보지 않는다. 탈권위주의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한국의 2030세대는 경제·문화적 영향력을 가진 선진국 시민의 눈으로 중국을 바라본다. 공산당 일당 체제하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홍콩 대만을 위협하는 중국을 보며 ‘가치의 거리’를 느끼는 것을 넘어 국가화된 ‘꼰대’에 가깝다고 여긴다.

둘째, 중국에 대한 비호감이 많지만 경제·안보 분야 영향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70%를 넘어섰고, 북한의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어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걸 2030세대는 잘 알고 있다. 중국이 2016년 한국에 ‘사드 보복’을 자행한 것 역시 그들은 직접 목격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만 같아 답답하지만 국익을 생각하면 중국에 등 돌릴 수도 없다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에 직면하는 게 2030세대의 세 번째 감정 경로다. 여기에 과거 수세기에 걸친 중국과의 비대칭적 관계, 6·25전쟁 때 서로 총을 겨눴던 역사적 기억까지 겹쳐지면 무력감은 적대감으로 번진다.

본보 인식 조사에서 2030세대가 중국에 비호감인 이유로 ‘김치와 한복이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을 가장 많이 꼽은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를 고압적으로 대해 온 중국이 전통문화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건드린 것이다.

2030세대의 반중 정서는 이처럼 구조적으로 누적된 감정이다.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 반일 감정은 깊이 잠재해 있으면서도 일상에서 체감되지 않는 ‘휴화산’이라면 반중 정서는 언제든 용암이 솟구칠 수 있는 ‘활화산’이다.

한중간 사드 갈등이 한창이던 2017년 8월 24일 서울 중구 명동 중국 대사관 앞을 관광객이 지나고 있다. 사드 문제로 양국 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을 보여주듯 중국대사관을 드나드는 사람도 드물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본보 심층 인터뷰에 응한 중국 2030세대 10명의 답변에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었다. 중국에 대한 한국 청년들의 ‘분노 버튼’은 달궈져 있는 데 비해 중국 청년들은 비교적 평정심을 유지하며 차분하게 한국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엔 위협이지만 각자 자국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란 취지로 말했다. 김치·한복 논란에 대해선 “문화란 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마련이다. 기원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며 무덤덤해했다. 한국인들의 비판을 부정하진 않으면서도 ‘그래도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는 태도는 간극을 좁히기 어려운 ‘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는 뜨겁고, 상대는 차가운’ 한중 미래세대의 구도가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중 갈등 격화로 우리 정부가 어느 한쪽의 선택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반중 감정은 균형 있고 냉철한 외교 전략을 추진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로선 국내 여론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고, 반중 여론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3연임을 시도하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하고 있어 반중 감정이 반한 감정을 자극해 한국 기업들에 불똥이 튈 수 있다.

MZ세대의 반중 정서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24일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는 우리 정부는 엄중한 국제정세에 대응하고 현명하게 중국을 활용하기 위해 반중 감정을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여러 대안이 필요하겠지만 중국과 대등한 외교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저자세 외교’는 타오르는 반중 감정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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