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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금통위가 밥값 하는 길

입력 | 2022-08-24 03:00:00

금통위원 연 5억 받는 값 했나… 금융에는 신비한 매직 없어
풀린 돈은 반드시 부작용 낳아… 빅스텝은 밀린 숙제 하는 것일 뿐



송평인 논설위원


금리 인하는 정부 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가 환영하는 바다. 금리 인하 시기에 금융통화위원은 ‘누워서 떡 먹기’ 같은 결정을 하면서 3억 원이 훨씬 넘는 연봉에 법인카드, 차량 지원까지 포함해 5억 원에 가까운 실질 보수를 받는다. 나중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금통위원이 받는 돈만큼 제 역할을 하는 때가 금리 인상기다. 아무도 금리 인상을 원하지 않는다. 기업과 가계는 이자 부담이 늘어 괴롭다. 정부는 경기가 나빠져 지지율이 떨어지니 괴롭다. 금통위로서는 금리 인상을 잘못했다가는 경기 침체를 초래했다는 독박을 쓰게 된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임기는 긴 금리 인하의 시기였다. 금통위는 박근혜 정부 시절 내내 금리를 내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금리를 0.25%포인트씩 두 번 찔끔 인상했다가 2019년 7월부터 도로 내리기 시작했다. 2020년 2월부터는 코로나가 돌아 금리를 더 내렸다. 2021년 8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금통위는 당연직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포함해 7명으로 구성된다. 비당연직 5명은 추천과 임명 과정이 그다지 독립적이지 못해 대부분 정부 기조에 순응하는 비둘기파로 구성된다. 두 정부에 걸친 저금리 기조는 비둘기파인 비당연직 위원들이 앞장서고 통상 매파 편에 서는 한은 쪽 인사들이 지도력을 발휘하기는커녕 마지못한 척하며 따라간 결과다. 다만 문재인 정부 때 집값이 너무 오르면서 정부마저 저금리를 원하지 않자 정부 기조에 맞춰 비둘기파에서 매파로 돌아선 위원들이 있었다. 2021년 8월 금리 인상은 그렇게 시작됐다.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집값이 오를 대로 오른 2020년 7월에도 “통화정책과 부동산가격 가계부채 간 관계에 대한 보다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는 위원이 있었다. 코로나가 영향을 미치기 전인 2019년 7월에는 “가계부채의 증가와 함께 가계의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율이 사상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으나 대출 금리가 추세적으로 하락함에 따라 소득 대비 이자 부담 비율은 오히려 과거보다 낮다”는 한가하다 못해 한심한 소리를 하는 위원이 있었다.

일부 위원은 “최근 수년간 물가상승률이 낮아지고 있다. 저물가 현상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며 세계 경제가 돈을 풀어도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뉴노멀로 향하고 있다는 듯이 말하기도 했다. 금융은 압력과 부피에 관한 ‘보일의 법칙’처럼 정확해서 뉴노멀이 없다. 뉴노멀은 대개 월가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다.

앨런 그린스펀은 월가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을 잘게 쪼개 팔아 눈에 보이지 않게 분산시킨 것을 골디락스라고 여겼다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벤 버냉키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헬리콥터에서 뿌리듯이 돈을 풀고도 모자라 양적 완화까지 하며 ‘인플레이션 없는 저금리의 지속’이 가능한 듯 대처하다가 그도 후임자들도 돈을 제때 거둬들이지 못하는 사태를 맞았다. 그린스펀도 버냉키도 무슨 매직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가 상대한 1980년 전후의 인플레이션은 일견 석유 파동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민주당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 공약에 따른 퍼주기와 공화당 리처드 닉슨이 ‘사회정책만은 (표를 얻기 위해) 진보적으로’ 한 결과인 더 많은 퍼주기에 의해 누적된 통화량이 석유 파동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는 점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황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경제학자들이 눈앞의 몇몇 지표에만 매달려 일반인에게도 뻔히 느껴지는 돈의 큰 흐름을 놓치곤 한다.

2008년 금융위기가 오기 전 한은의 기준금리는 5%를 넘었다. 지금 기준금리가 올랐다고 해도 고작 2.25%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수억 원씩 돈 빌리는 걸 만만하게 여겼던가. 돈이 풀린 상태를 뉴노멀로 고착시켜 이익을 지키려는 세력이 경기 침체로 겁주면서 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이번 인플레이션은 볼커 때처럼 경기 침체를 감수하지 않으면 못 잡을 수도 있다. 당장의 경기 침체보다 걱정해야 할 것은 비정상적 저금리가 심연을 파놓은 사회적 간극의 고착화다. 빅스텝은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하는 것임을 금통위는 명심하라.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