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905년 독도를 일본령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하는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 페이지.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시마네현에 속하는 일본 해상의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도 일본 고유의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으며 일본은 여기에 계속 항의하고 있다.’(일본 도쿄서적의 ‘지리탐구’ 교과서 중)
올 3월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교과서의 일부다. 같은 교과서의 2016년 검정본에서는 ‘한국과 사이에서 다케시마를 둘러싼 문제가 있다’라고만 서술돼 있었다. 수정된 교과서는 독도 일본의 영토라는 점을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한국의 불법성을 강조한 것이다.
또 다른 교과서에서는 독도 관련 서술이 거의 2배로 늘었다. ‘17세기 초 일본인이 이용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현재도 한국의 불법 점거는 계속되고 있다’ 등 기존에 없던 설명이 추가됐다.
● 위안부에서 ‘일본군’ 흔적 지우기
동북아역사재단은 이같은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를 진단하는 ‘2022년도 일본 고등학교 검정 교과서의 한국 관련 서술 분석’ 학술회의를 25일 개최한다. 일본 교과서의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 온 일본 학자들이 직접 나서 일본 교과서가 한일 근·현대사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짚을 예정이다.
참석자들은 일본 교과서의 ‘개악’이 일본 정부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미리 배포된 자료집에서 와타나베 미나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사무국장은 “지난해 3월 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가 아닌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는 결정을 내렸다”며 “그 후 출판사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여는 등 교과서 개정 과정에 압박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개정 교과서의 종군위안부 관련 기술에서는 ‘일본군’ 표현을 삭제한 경우가 많았다. 야마카와 출판사의 일본사 교과서는 ‘조선인 여성 등 중에는 종군위안부가 되기를 강요된 자도 있었다’는 문구를 ‘일본·조선·중국 등의 여성 중에는 위안부가 되기를 강요된 자도 있었다’고 수정했다. 군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우고, 피해 여성 중에 일본인도 포함돼 있다는 걸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와타나베 국장은 “(일본 교과서는)위안부 문제가 왜 전시 성폭력 문제인지를 다루지 않고 있다”며 “일본 학생들은 교과서를 통해 위안부 문제의 구체적인 사실을 배울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 ‘강제 연행’ 대신 ‘동원’
일본의 조선인 강제 동원과 관련해서는 ‘강제’라는 표현이 삭제된 교과서가 많았다. 가령 ‘일본으로 연행되었다’를 ‘동원되었다’로 바꾸는 것이다. 짓쿄출판사는 ‘강제적으로 연행해 노동에 종사시켰다’는 문구를 ‘동원하여 일하게 했다’로 수정했다. 반면 중국인에 대해서는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뒀다.
일본 측 참석자들은 이같은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식민지의 폭력성을 희석시킨다고 지적했다. 가토 게이키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한국병합’이라는 표현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가토 교수는 “‘한국병합’은 대한제국의 패망, 강제적인 식민지화의 실태를 덮기 위해 일본이 만들어낸 용어”라며 “‘한국이 병합조약을 강요당했다’와 같이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으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학술회의를 기획한 동북아역사재단 조윤수 연구위원은 일본의 교과서 기술 문제가 국제사회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연구위원은 “만약 독일이 역사교과서에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술을 생략하거나, 폴란드 침공을 ‘진출’로 표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며 “일본의 교과서는 국제사회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