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만에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김외순 씨(50·부산 해운대구)의 아버지 고(故) 김종화 씨는 김 씨가 국민학교 5학년이던 1984년 1월 부산에서 실종된 뒤 사망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려온 곳은 부랑자와 걸인 등을 수용하던 부산 소재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이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최근 진상조사를 벌인 결과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지었다고 24일 밝혔다. 1987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만에 국가 기관이 처음으로 ‘국가 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한 것이다.
●38년 전 형제복지원서 사망한 아버지
부산 형제복지원
김 씨는 당시엔 아버지가 형제복지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전보를 받고 아버지를 찾아 형제복지원에 갔던 삼촌으로부터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삼촌을 따라 나섰던 어린 남동생은 훗날 ‘아버지 시신에 구타와 고문 흔적이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아버지가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2020년 피해자모임을 찾아갔다. 조언에 따라 사망자 제적등본을 떼어 보니 아버지의 사망 장소로 기재된 주소가 형제복지원 주소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김 씨 부친처럼 평범한 사람이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김 씨는 “아버지는 고향에서 자개장 만드는 사업을 하던 기술자셨다”며 “부랑아나 걸인이 수용됐다던 형제복지원에서 돌아가셨을 거라곤 오랫동안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첫 정부 차원 진상조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생존 피해자 이채식(왼쪽 두번째) 씨가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사망자가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 많은 657명이라고 밝혔다. 또 위원회는 수용자들에게 정신과 약물을 강제로 먹여 무기력한 상태로 통제한 사실과 국가가 실상을 알면서 묵인한 정황도 등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생존 피해자들은 이 자라에서 트라우마를 치유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2022.08.24. 뉴시스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국가의 책임성을 밝혀냈단 점에서 의미 있는 조사 결과”라고 했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해당 법인이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 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000여 명에 달했다. 이번 조사 결과 이 기간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이는 총 657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 조사에선 피해자 포함 경찰 공무원 등 관계자 진술을 통해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상당 부분 드러났다. 특히 고 김종화 씨와 유사하게 일정한 거주지가 있는 이가 무분별하게 단속, 수용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는 이번 조사에서 “1980년 어느 날 오후 10시쯤 식당 일을 마치고 고향인 경북 김천에 가려고 부산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 경찰이 파출소로 끌고 갔다”며 “차표를 보여주며 고향 가는 길이라고 했는데도 강제 연행됐다”고 진술했다.
●피해자 손해배상 길 열릴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생존 피해자 박순이 씨가 오열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사망자가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 많은 657명이라고 밝혔다. 또 위원회는 수용자들에게 정신과 약물을 강제로 먹여 무기력한 상태로 통제한 사실과 국가가 실상을 알면서 묵인한 정황도 등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생존 피해자들은 이 자라에서 트라우마를 치유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생존 피해자들은 이 자라에서 트라우마 치유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2022.08.24. 뉴시스
피해자들은 손해배상 소송에서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가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모임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진실규명으로 피해당사자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고, 국가는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한편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이기욱 기자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