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76% LNG 등 화력발전 의존… 에너지 대란에 무역수지 적자 타격 2030년대 새 원전 상업운전 목표… 운전정지 7기, 내년 재가동 방침 최장 60년인 가동기간도 늘리기로… 시민단체는 안전 우려 반대시위
일본 정부가 차세대형 원자력발전소 개발 및 건설에 착수한다. 2030년대에 신규 원전을 완공해 상업운전을 시작하겠다는 목표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원전 증설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11년 만에 전환한 것이다. 내년 이후 원전의 대규모 추가 재가동 방침도 공식화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 화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천연가스 가격 급등에 따른 세계적 에너지 대란 확산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원전 개발 및 재가동을 통해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춰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겠다는 게 일본 정부 목표다.
○ 후쿠시마 사고 11년 만에 원전 증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24일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 실행 회의’를 열어 차세대형 원전 개발 및 건설을 검토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원전이 실제로 건설되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내년 여름 이후 추가 재가동 계획도 밝혔다. 현재 일본에는 총 33기의 원전이 있으나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한 뒤 안전 점검을 거쳐 원전 10기를 재가동했다. 그나마 이 중 4기는 정기점검 등을 이유로 한동안 운전 정지 상태다.
현재 최장 60년인 일본 원전의 가동 기간도 늘린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40년간 원전을 가동한 뒤 심사를 거쳐 최장 20년 연장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수개월∼수년이 걸리는 점검 기간을 가동 기간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원전 사용 기간을 늘린다.
○ 탈탄소-전력 수급 안정 위해 원전 불가피
일본 정부가 원전 개발 및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원전 활용 없이 에너지 대란 대처 및 안정적 전력 수급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천연가스, 석탄 등을 활용한 화력발전에 전력의 76%를 의존하고 있다. 원전 비중은 6%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은 최근 글로벌 에너지 대란의 타격을 크게 입었다. 7월 일본 무역수지는 1조4367억 엔(약 14조 원) 적자로 1979년 이후 최대 규모를 나타냈다. ‘에너지 수입액 증가→무역적자 확대→달러 수요 증가→엔화 가치 하락’이라는 악순환이 벌어지면서 에너지 대란이 일본 경제 전체에 타격을 주고 있다.
다케우치 준코 국제환경경제연구소 이사는 “원전의 운전기간 연장은 각국이 가장 저렴한 온난화 대책으로 진행하는 정책”이라며 “원전 가동을 통해 액화천연가스 등의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총 17기를 재가동할 경우 연 1조6000억 엔(약 15조 원)의 에너지 도입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사실상 붕괴된 일본 원자력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출력 30만 kW 규모의 소형모듈원자로(SMR)를 개발해 일본 전력회사들과 설계 협의에 착수했다. 미국, 한국 등이 SMR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에서 미래 유망 산업의 초기 투자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