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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만에… “형제복지원,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국가책임 인정

입력 | 2022-08-25 03:00:00

진실화해위, 진상조사 결과 발표



경찰 단속에 걸려 형제복지원으로 끌려온 아동들의 모습.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제공


1970, 80년대 대표적 인권 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국가 기관이 국가 책임을 처음 인정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회)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를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1987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무려 35년 만이다.
○ “38년 만에 아버지 한 풀었다”
부산 소재 사회복지법인이었던 형제복지원은 1975∼1987년 부랑인 선도를 내걸고 수용자를 감금한 뒤 강제노역과 구타, 학대를 일삼았다. 사망하면 암매장해 흔적 없이 처리했다. 경찰과 부산시 공무원 등은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멀쩡한 이들을 형제복지원에 끌고 가며 인권침해에 가담했다.

자개장 기술자였던 김종화 씨는 1984년 1월 처가에 있는 자녀들을 데리러 부산에 갔다가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사망했다. 김 씨의 딸 외순 씨(50·부산 해운대구)는 23일 위원회의 발표 내용을 전해 듣고 동아일보 기자에게 “38년 만에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게 됐다. 이제야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다”고 밝혔다.

위원회의 조사 결과 김 씨처럼 일정한 거주지와 가족이 있는 이들이 강제 수용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73년 9세 때부터 12년간 수용됐던 강모 씨는 조사에서 “시청 차가 갑자기 싣고 데려갔다. 시청에서 (부산) 영도가 집이라고 말했는데도 형제복지원에 보냈다”고 진술했다.
○ “인권침해 사실 파악하고 악용”

진상조사 과정에선 당시 정부가 형제복지원의 인권침해 사실을 파악한 상태에서 이를 악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위원회는 1986년 국군보안사령부 요원이 형제복지원을 조사한 뒤 상부에 보고한 3쪽 분량의 문건을 입수했다. 문건에는 “형제복지원은 부랑자 3000여 명을 강제 격리 수용하고 있는 시설로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가 이뤄진다”, “재소자 대부분이 탈출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요원은 1985년 납북됐다가 귀환한 어부 김모 씨가 형제복지원에 입소하자 감시하기 위해 형제복지원에 위장 입소했다.

위원회는 “보안사는 이 수사공작을 ‘갈채공작’으로 명명하고 승인했다”며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으로부터 서약서를 받고 지속적으로 관리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정부가 일부 공안사범을 ‘신원특이자’로 구분해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고 감시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존안 자료 등을 분석해 보니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이력이 있는 이들이 경범죄 등으로 검거됐을 때 형제복지원에 수용해 강도 높은 감시를 한 정황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 “숨겨진 죽음 105명 더 있었다”

 24일 서울 중구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피해 생존자들도 참석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위원회는 이번 조사를 통해 숨겨져 있던 사망 피해자 105명을 추가로 밝혀냈다. 강제노역과 구타 등으로 숨진 형제복지원 사망자는 기존 조사에서 552명으로 파악됐는데, 명단 등을 새로 종합한 결과 657명으로 늘었다.

피해자들은 이번 진상조사 결과가 국가의 정식 사과 및 공식 손해배상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모임 대표는 “국가는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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