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컨슈머가 온다]〈3〉대세 된 ‘보더리스’ 소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문화센터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7시 진행되는 일본가정식 만들기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재료 손질법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요리 강좌를 듣는 남성 비중이 2019년의 2배로 늘어나는 등 특정 성별에 한정되던 강의들이 사라지는 추세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진성은 씨(25)는 매주 일요일 저녁 풋살 동호회에 나간다. 여성 전용 풋살 경기만 나가던 그는 ‘보다 혹독한 경기’를 치르고 싶어 남녀 혼성 동호회를 찾는다. 필드에서 뛰는 선수 12명 중 여자 선수가 늘 2, 3명은 된다. 진 씨는 “발로 차이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재밌다”며 “본격적으로 뛰어 보려 풋살화까지 장만했다”고 했다.
#2. 이달 초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 이정재가 화제가 됐다. 분홍색 재킷에 알이 굵은 진주 목걸이를 하고 나온 것. ‘청담동 사모님 같다’는 반응과 함께 ‘고정관념을 탈피한 남자 패피’라는 반응이 잇따랐다.
실제로 올해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을 관통한 건 ‘젠더리스’였다. 질샌더와 펜디 등 런웨이에서 남성 모델들은 진주 목걸이와 천을 꼬아 만든 팔찌를 차고 큼지막한 브로치 등을 차고 나타났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중년 여성의 상징이던 진주 목걸이가 젊은 남성의 패션 감각을 상징하는 액세서리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 민화 배우는 20대, 방송댄스 추는 40대
강좌마다 뚜렷하게 나뉘던 성별 경계도 더 허물어졌다. 올해 요리 강좌를 듣는 남성 비중은 2019년의 2배로 늘었다. 요가·필라테스 수업은 올 들어 남성 수강생 비중이 기존 10%에서 15%로, 육아·아이 동반 수업은 2%에서 10%로 늘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복싱이나 필록싱(필라테스와 복싱을 혼합한 운동) 수업에 참여하는 여성과 공예, 꽃꽂이 수업을 찾는 남성이 동시에 많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 진주 목걸이 하는 남자, 로드바이크 타는 여자
G마켓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여성 소비자들은 배구(84%·전년 동기 대비), 야구(40%), 축구(37%) 용품 지출을 남성보다 큰 폭으로 늘렸다. 반면 남성 소비자들은 짐볼(36%), 요가매트(34%) 지출을 늘렸다. 한국여자야구연맹에 따르면 올해 아마추어 여자 선수는 지난해보다 10%가량 많아졌다. 연맹 관계자는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야구, 풋살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했다.
연령 구분도 허물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강모 씨(62)는 일주일에 3번씩, 스피닝과 코어 강화 운동을 번갈아 가며 한다. 그는 “나이 들어 힘들 줄 알았는데 막상 해 보니 건강해지는 기분”이라며 “수업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에게 큰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실제로 충분한 근력과 폐활량을 필요로 하는 운동을 즐기는 ‘액티브 시니어’가 늘었다. 축구와 배구 용품 판매는 60대 이상에서 각각 45%, 101%씩 증가했다. 반대로 20∼30대는 걷기, 자전거 타기 등을 즐겼다. 20∼30대의 만보계(23%), 자전거(90%) 판매 증가율은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 비대면 시대 만개하는 멀티 페르소나
보더리스 현상은 최근 1∼2년 새 급속히 확산됐다. 최창희 클랙스턴파트너스 파트너는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2000년대 청소년기를 보내온 이들이 현재 30∼50대가 됐다”며 “이들이 비대면 디지털 환경에서 폭넓은 문화에 노출되면서 성별이나 연령에 구애받지 않는 소비를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메타버스, 재택근무 등 비대면 라이프스타일의 보편화로 성별, 연령별 고정적인 역할을 벗어난 유연함은 소통을 위한 필수 자질이 됐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멀티 페르소나(다중적 자아)’가 트렌드로 부상하자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