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성장률이 좀 낮아지더라도 물가를 우선적으로 잡아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5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당분간 물가 중심의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며 이 같이 밝혔다.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지금은 성장보다는 물가안정이 더 중요시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 총재의 발언은 이날까지 사상 처음 4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린 한은이 필요하면 올 연말까지 5, 6차례 연속 금리 인상도 고려하겠다는 신호로 풀이됐다. 이렇게 되면 기준금리가 올 연말 3.0%, 내년 상반기엔 그 이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이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 4번 연속 올린 한은, 추가 인상 시사
이 총재는 이날 간담회에서 “인플레이션이 올라가면 실질소득이 떨어지고 취약계층과 저소득층에 영향이 크다”면서 “우리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좋다면 물가를 우선적으로 잡는 게 국민 경제에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금리를 계속 올려야 한다는 한은의 인식에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물가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미국 유럽 등 주요국에 비해서는 그나마 선방하고 있어서 금리 인상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한은은 이날 올해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에도 2.6%는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내년 초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당초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이 올해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이 총재의 경기와 물가에 대한 발언을 보면 내년 인상 가능성도 열어놔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한은 금통위원을 지낸 함준호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물가가 높은 수준에 있더라도 수요 측면이 아닌 공급 측면의 압력 때문이라면 금리를 계속 올릴 필요는 없다”며 “물가 압력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금융위기 우려할 상황 아냐”
이 총재는 최근 환율 급등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진 것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과거와 같은 경제위기 상황이 재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이 총재는 “마치 우리 유동성, 신용도에 문제가 있어 1997년이나 2008년 같은 사태(외환·금융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들을 한다”면서 “하지만 현재는 우리 통화만 절하되는 게 아니라 달러화 강세로 다른 주요국이 다 겪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와 달리 한국은 채무국이 아니라 순채권국이기 때문에 유동성이나 신용위험보다는 환율 상승으로 인한 물가를 더 걱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도 브리핑을 통해 “외화유동성 지표가 과거 위기 때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라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금융위기나 외환위기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위기설을 차단했다.
그러나 최근의 금융시장 상황에 좀 더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 중앙은행이 9월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나서 한미 금리 차가 벌어지고 환율 상승 압박이 거세지면 한은이 10월 회의에서 뒤늦게 빅스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