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8월이 되면 출항 시 태풍의 진로에 노심초사 관심을 기울였던 항해사, 선장이었던 때가 생각난다. 서울의 대학에서 강의하는 지금도 8월이 되면 바다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이 된다. 일반인들, 심지어 해운인들도 태풍이 왔을 때 바다보다는 항구에 있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큰 오해이다.
심수봉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고 했다. 이 가사에는 남자는 배와 같이 항구에 미련을 두지 말고 떠남에 멋이 있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태풍이 오면 항구에 미련을 두지 말고 한시라도 빨리 바다로 나가야 한다. 사람들은 바다 위 풍랑 속에서 어떻게 배가 견디느냐고 반문한다. 아니다. 배는 흔들릴지언정 전복되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 넓은 바다에서 파도를 타야 한다. 이를 히브 투(heave to)라고 한다. 바람과 맞서서 바다에서 버텨내야 한다. 태풍이 다가올 때는 파도와 바람이 무섭게 몰아친다. 선박이 1시 방향에 파도를 받는다. 태풍이 점차 가까워 옴에 따라 바람의 방향도 바뀐다. 이에 맞추어 선수를 틀어주면서 1시 방향에서 파도를 맞도록 한다. 태풍이 지나가면 바람은 정말 순식간에 잠잠해진다.
만일 선박이 항구에 닻을 놓고 있다면, 닻이 바람을 이기지 못해 결국 배가 좌초되고 만다. 부두에 붙어 있던 선박을 잡아주던 밧줄이 모두 터져버린다. 결국 또 배는 좌초하고 만다. 닻을 두 개 놓아서 선박이 강한 바람에 버티는 힘을 키워서 태풍을 견뎌내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두 개의 닻줄이 꼬이면 나중에 닻을 감아올리기 어려워 큰 낭패이다. 그래서 노련한 선장은 태풍이 오면 한시바삐 바다로 나간다. 선장이 판단을 미적대다가 발달한 태풍의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에 선박이 밀려서 항구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좌초한 사고가 국내외에 2건이 있었다. 1995년 시프린스호 여수오염사고와 2006년 일본 가시마 오션 빅토리호 사고이다. 큰 교훈이 된다.
대자연 앞에서 사람은 정말 작고 연약한 존재가 된다. 대자연 중 하나인 바다의 법칙을 알고 이를 잘 활용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승선을 통해 알게 된 값진 경험이다. 나의 이런 바다 경험을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참으로 좋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