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韓에는 있고 美에는 없는 대통령 기자회견장 ‘이것’[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입력 | 2022-09-03 12:00:00

대통령 vs 기자의 진검승부
‘3무(無) 원칙’ 백악관 기자회견 현장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십니까. 영어를 잘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으로 모이십시오. 여러분의 관심사인 시사 뉴스와 영어 공부를 다양한 코너를 통해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해주시면 기사보다 한 주 빠른 월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신청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83995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백악관 홈페이지

“The best days of this country are still ahead of us, not behind us.”(이 나라의 최고의 날들은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다. 앞으로 올 것이다)
 
올해 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날 회견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발언이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이어 인플레이션 위기가 닥쳐오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위로가 되는 발언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근 한국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회견의 완성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내용과 형식 측면에 한국과 상당히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성과 홍보나 정책 설명 보다 리더로서의 신념과 철학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자회견을 두고 “character study(인성 연구)의 기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기자회견은 대통령과 기자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전쟁터와 같습니다. ‘unscripted’(무각본), ‘unscreened’(무검열), ‘unvetted’(무조사)는 미국 대통령 기자회견의 3대 ‘un’(無) 원칙으로 통합니다. 기자들이 질문을 사전에 제출하거나 질문할 기자를 미리 정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런 방식의 기자회견은 존 F 케네디 대통령부터 정례화됐습니다. 대통령과 기자들이 열띤 논쟁을 벌이는 케네디 시절의 기자회견은 TV로 생중계돼서 드라마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올렸습니다.
 
말실수가 잦은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이 체질상 맞지 않습니다. 그래도 성심성의껏 합니다. 무려 2시간동안 진행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참석 기자 30명의 질문을 다 받았습니다. “몇 시간은 더 할 수 있겠다”며 농담까지 했습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더 이상 기자들의 질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단상을 내려왔습니다. 기자회견을 국민과 소통하는 중요한 통로로 보는 미국 대통령의 자세를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대통령 기자회견 명장면을 알아봤습니다.
 

2015년 이란 핵협상 타결 후 기자회견을 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You should know better.”(그런 질문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탁월한 연설력을 가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연설력이 뛰어나니까 기자회견도 많이 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연 20회 정도로 최근 5명의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적게 했습니다. 하지만 할 때는 확실하게 했습니다. 동문서답을 하거나 건성으로 대답하지 않고 확신에 찬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오바마 기자회견의 특징입니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했습니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이 경제제재를 단계적으로 풀어주는 내용입니다. “역사적”이라는 수식어기 붙을 만큼 중요한 협상 타결이었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장 이란에 구금돼 있는 미국인 인질 4명 문제가 거론됐습니다. 테러국과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외교 원칙을 깨고 이란과 협상을 타결한 것에 대해 반발이 거셌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질문이 나왔습니다. 메이저 갸렛 CBS방송 기자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인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협상을 타결한 것에 대해 만족하느냐”(Can you tell the country, sir, why you are content to leave the conscience of this nation unaccounted for in relation to these four Americans)고 물었습니다. “미국의 양심”을 거론한 날카로운 질문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답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난처하게 하는) 질문을 만드느라 수고했다”는 농담을 던진 뒤 “미국 시민이 이란 감옥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만족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어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다”면서 자신이 직접 인질 가족을 만난 사연을 소개하고 인질 석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기자를 향해 “you should know better”(그런 질문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라는 따끔한 충고로 대답을 마무리했습니다.
 
“you should know better”는 직역을 하자면 “너는 더 잘 알아야 한다”입니다.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뜻입니다. 잘못을 지적할 때 쓰는 화법입니다. 대놓고 비난하면 상대가 기분이 상하니까 예의를 갖춰 지적할 때 씁니다. 대통령으로부터 ‘꾸중’을 들은 갸렛 기자는 유명해져서 나중에 토크쇼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you should know better”라고 한 것에 대해 나중에 사과했다고 밝혔습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 “I’m not a crook”(나는 사기꾼이 아니다)을 대서특필한 미국 신문. 뉴욕데일리뉴스 캡처



“I’m not a crook.”(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1973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언론사 편집국장단 총회에 초대 연사로 참석했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국장단의 질문은 당시 최대 이슈였던 워터게이트 스캔들에서 닉슨 대통령의 역할, 은폐 공모 여부 등에 맞춰졌습니다.
 
흥분한 닉슨 대통령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알아야 한다.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people have got to know whether or not their President is a crook. Well, I’m not a crook) 라고 주장했습니다. 발언의 여파는 엄청났습니다. 전국에 생중계에 된 연설에서 현직 대통령이 “crook”(크룩)이라는 점잖지 못한 단어를 입에 올렸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조절하고 현명한 어법으로 표출하는 것은 대통령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다음날 아침 모든 언론의 헤드라인은 “I’m not a crook” 문구로 도배됐습니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나온 가장 충격적인 발언으로 꼽힙니다.
 
‘crook’은 원래 ‘구부리다’는 의미입니다. ‘갈고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목표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물론 닉슨 대통령은 자신이 사기꾼이 ‘아니다’는 부정의 의미로 썼지만 국민들의 뇌리에는 ‘president=crook’의 등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정치학 경영학 교과서에는 리더가 공식석상에서 절대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부정 화법의 대표적인 사례로 닉슨 대통령의 ‘crook’ 사건이 꼽히게 됐습니다.
 

1988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조지 H W 부시 당시 부통령이 “read my lips, no new taxes”(내 입술을 읽어라. 세금인상은 없다)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공화당 전당대회 홈페이지

“I’d like it to be a four-year pledge.”(4년의 공약이다)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1988년 대선 유세 때 “read my lips, no new taxes”(내 입술을 읽어라. 세금인상은 없다)라는 발언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 발언은 부시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취임 후 재정적자가 불어나면서 부시 대통령은 세금을 인상했습니다.
 
1990년 세금 인상이 거론되던 무렵 CBS 기자이자 시사프로그램 ‘60분’의 진행자인 레슬리 스탈은 부시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입술을 읽어라’가 몇 년 기한의 공약이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1년, 2년, 4년?”(is that a 1-year pledge, 2-year pledge, 4-year pledge?)이라고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1,2년 요란하게 홍보하다가 폐기하는 공약인지, 대통령 임기 끝까지 밀고 갈 공약인지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잠시 주저하다가 “4년 공약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자신의 최대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질문을 “gotcha question”(가챠 질문)이라고 합니다. “I got you”(잡았다)의 줄임말로 상대를 코너로 모는 유도 질문입니다. 질문을 받은 당사자는 신뢰도에 타격을 입는 것을 알면서도 불리한 답변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교묘한 질문은 역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상황에 따라 공약이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국민들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스탈 기자는 나중에 부시 대통령 장례식 때 이 질문을 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습니다.

● 명언의 품격

1968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남성 기자들과 함께 린든 존슨 대통령을 취재하고 있는 헬렌 토머스 기자. 헬렌 토머스 자서전 ‘프론트 로 위드 헬렌 토머스’ 발췌

백악관 기자실 맨 앞줄 중앙석은 여성 최초로 백악관을 출입한 헬렌 토머스 기자의 지정석이었습니다. 대통령 기자회견의 첫 질문권을 가졌으며, 회견이 끝날 때 “thank you, Mr. President”라는 인사말을 하는 것도 토머스의 권한이었습니다.
 
하지만 중동 문제에서 토머스의 친(親) 팔레스타인 견해는 유대계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언론계에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2010년 유대계 단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땅이 아니다. 폴란드나 독일, 미국으로 떠나라”는 발언이 문제가 되면서 기자직에서 물러났습니다. 3년 뒤인 2013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여성 기자들이 토머스를 “trailblazer”(선구자) “glass ceiling breaker”(유리천장 타파자)라고 애도했습니다.
 
“Everything in the White House is classified. The color of the walls? they would even classify that.”(백악관의 모든 것이 기밀사항이다. 벽 색깔? 아마 그것도 기밀로 하고 싶을 것이다)

토머스는 2000년 내셔널 프레스 클럽 연설에서 백악관의 비밀주의를 비판했습니다. 뻔히 보이는 벽 색깔까지도 비밀에 붙이고 싶어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토머스다운 유머가 빛나는 대답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백악관이 다루는 서류에는 ‘classified’라는 붉은 도장이 찍힙니다. ‘기밀문서’라는 뜻입니다. ‘classify’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분류하다’라는 뜻이 있고, ‘기밀사항으로 취급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최근 미 연방수사국(FBI)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declassified’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반출한 백악관 문서들이 퇴임 전 ‘기밀해제한’ 것들이라고 주장하지만 기밀해제의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 사법당국의 판단입니다.

● 실전 보케 360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재해를 입은 켄터키 주를 방문해 폭우에 떠내려간 스쿨버스가 건물에 부딪힌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보름 넘게 백악관에 격리됐던 바이든 대통령이 격리가 해제되자마자 재해지역 켄터키 주를 찾았습니다. 최근 기록적인 폭우로 38명이 사망 실종되고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은 곳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수해 현장을 둘러본 후 초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재난 대응에 정치적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우리는 원 팀(one team)”이라고 강조했습니다.
 
△“When I got elected, I promised to be, and it's not hyperbole, the president to all Americans.”(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나는 모든 미국인들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건 빈말이 아니다)
 
대통령 당선 연설을 상기시키며 “나는 모든 미국인들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맹세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강조하기 위해 “it’s not hyperbole”라고 했습니다. “이건 허풍이 아니다” “빈말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hyperbole’(하이퍼벌리)는 ‘허풍’ ‘과장’을 뜻합니다. hyper(부풀리다)와 bole(말하다)가 합쳐진 것입니다. ‘hyperbole’는 몰라도 ‘hype’(하이프)는 아는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hyperbole’의 줄임말이 ‘hype’입니다. 재미있는 사회 현상이 나타나면 언론이 너도나도 뛰어들어 이를 부각시키는 것을 ‘media hype’(미디어 하이프)라고 합니다. 요즘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을 ‘metaverse hype’이라고 합니다.

●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9년 3월 5일 소개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한 내용입니다. 재미 측면에서 보자면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따를만한 것이 없습니다. 마치 방송인 트럼프가 진행하는 한 편의 리얼리티 쇼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백악관 홈페이지

▶2019년 3월 5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305/94389457/1

“He doesn’t lecture, he fights”(그는 설교하지 않는다. 싸운다). 한 미국 정치 평론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한 말입니다. 다른 대통령들이 설교할 대 트럼프 대통령은 싸웁니다. 그가 가장 빛날 때는 적을 설정해 휘몰아치는 공격을 가할 때입니다. 미디어의 속성을 잘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설교보다 싸움이 TV 화면에 인상적으로 비친다는 점을 십분 활용합니다.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별다른 ‘드라마’가 없었습니다. 합의가 불발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특기인 비난을 퍼부을 상대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마이크 앞에 서면 술술 말을 잘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1시간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에 얽힌 얘기들을 풀어놓았습니다. 
 
“He is quite a character.”(그런 사람 또 없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quite a character’는 ‘흔치 않은(unusual) 인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 또 없지’ ‘인물이야 인물’ 등의 뜻입니다. 주로 상대방을 칭찬할 때 쓰지만 비난할 때도 종종 쓰입니다. 고집불통인 사람을 가리킬 때도 “he is quite a character”라고 합니다. 
 
“I happen to believe that North Korea’s calling its own shots.”(북한은 스스로 결정하는 나라라고 믿는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call its own shots’는 ‘스스로 알아서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의미에서 한 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believe’가 아닌 ‘happen to believe’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 중 하나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믿게 됐다’의 뜻입니다. 조금 자신이 없거나, 자신의 의견이 소수처럼 느껴질 때 씁니다. 
 
“I’d much rather do it right than do it fast.”(일을 빨리 처리하기보다 올바르게 처리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에 서명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올바르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인들은 ‘do it fast’(빨리빨리)보다 ‘do it right’(빈틈없이, 틀린 것 없이)를 중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