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심윤경 지음/224쪽·1만3000원·사계절
“할머니는 소인이 찍힌 한 장의 우표 같은 느낌이었다. 아주 작고, 평면적이고, 어느 날 삶의 쓰임새를 다해 이제는 극도로 조용하게 우표 책에 꽂혀 계신 분.”
어디 할머니만 그럴까.
자식들은 다 그렇다. 부모님의 젊은 날도 가늠이 안 된다. 아니, 별로 상상해 보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어른이었고, 나이 들어 있었다. 우릴 세상에 있게 해준 분들인데도, 그저 당연히 거기 있어 왔다 여긴다.
작가의 할머니는 우리네 어르신들과 똑 닮았으되 또 다르다.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험난한 세상사를 버텨내며 “내 속은 아무도 몰러” 하고 삭혀 내셨다. 말수가 적지만 몇 마디로 모든 상황을 보듬어 주셨고, 기다림과 믿음이 뭔지 표정만 갖고 일깨워 주셨다. 그렇다고 뭐 그리 거창하지도 않다. 할머니는 할머니일 뿐이기에 소중하고 위대하다.
등단 20년 만에 처음 썼다는 에세이는 솔직히 부럽기 짝이 없다. 우리 곁을 떠난 사랑하는 이에게 이런 글을 선물할 수 있다면, 당신께선 얼마나 기뻐하실는지. “죽으면 끝이여”라 생각하셨어도, 왠지 특유의 과하지 않은 미소를 싱긋 머금어 주시지 않을까.
게다가 이 책은 ‘자녀교육 지침서’로도 큰 울림을 지녔다. 할머니의 가르침을 어렵사리 딸에게 이어가려는 깨달음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쑥스러웠을 시행착오를 털어놓는 게 간단치 않았을 텐데 공감을 나누고픈 작가의 마음 씀씀이도 고맙다. 처음 잡았을 때도 술술 잘 넘어가지만, 곁에 뒀다가 두고두고 곱씹어 보아도 좋겠다. ‘꿀짱아’(딸 별칭)가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긴 한데, “장혀” 한마디 얻은 것으로도 읽을 가치는 차고 넘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