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셔스/롭 던, 모니카 산체스 지음·김수진 옮김/333쪽·1만8000원·까치
아프리카 우간다의 한 숲에서 암컷 침팬지가 무화과를 먹고 있다.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유사한 미각 세포 내 미각 수용체를 가졌다고 한다. 침팬지는 좋아하는 과일이 나는 장소와 시간을 기억했다가, 과일이 익을 때쯤 찾아간다. 맛을 음미한다는 점에서 침팬지도 미식가라 볼 수 있다. 까치 제공
누군가는 현대인들의 최대 고민이 ‘점심 메뉴 선정’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이유는 음미하는 순간 주어지는 행복 때문이 아닐까. 그럼 옛날 옛적 우리 조상들은 어땠을까. 구석기시대 채집으로 먹고산 인류에게도 ‘최애’ 열매가 있었을까.
먹거리가 풍부한 시대에 음식은 쾌락의 영역에 속한다. 반면 구석기시대 사람들에겐 즐거움보단 생존의 문제였다. 이로 인해 과학계는 과거 음식을 연구할 때 ‘맛’이란 측면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미식(美食)은 오직 요리사나 주방장이 등장해야 가능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응용생태학과 교수와 의료인류학자인 저자들은 이런 단정이 잘못됐다고 반박한다. 음식을 즐기는 행위는 인류의 진화에서 중요한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학계에서 간과했던 ‘맛’을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재정립한 것이다.
저자들은 잡식 동물인 인류는 이런 향미를 추구하는 본능이 진화를 이끌었다고 봤다. 향미를 의식하면서 이와 관련된 새로운 도구를 발명하기도 했다. 인류와 가장 비슷한 미각을 지닌 침팬지는 막대기로 꿀을 떠먹고, 돌로 견과류를 부숴 먹는다.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 역시 날것보다 익힌 음식이 더 맛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구로 음식을 가공하면서 점차 턱 근육이 축소되고 치아 크기가 줄었으며 대장은 짧아졌다.
향미에서도 ‘향’은 특히 인류의 뇌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진화 과정에서 단순한 한 가지 향보다 여러 복합적 향이 나는 화합물이 좋다는 걸 알게 됐다. 때문에 일부러 음식을 ‘변질시키는’ 고기 굽기나 치즈 발효를 발명했다.
향은 뇌의 학습 능력을 늘리는 데도 도움을 줬다. 향을 통해 관련 기억을 뇌에 저장할 수 있었다. 또 어떤 향이 포함된 음식을 자주 맛볼수록 그에 대한 판단이 더욱 정교해지기도 한다. 현대의 소믈리에는 연습을 통해 이런 “범주화”가 가능해진 향미 전문가라 볼 수 있다. ‘카테고리’는 기억력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맛의 쾌락은 인류를 둘러싼 생태계도 바꿔 놓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매머드의 멸종이다. 석기시대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클로비스’ 유적에는 길이가 긴 창촉이 자주 등장한다. 매머드 등 덩치 큰 대형 동물을 사냥하기 좋은 무기다. 한마디로 고기가 너무 입에 맞다 보니 지나치게 과잉 소비한 것. 클로비스 인류가 북아메리카로 건너온 시점과 매머드와 같은 동물의 멸종 시기가 일치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